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시호 Dec 06. 2018

이건 봐야 해: <호두까기 인형>

넛크래커 안 본 사람 없게 해 주세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tmi 송구합니다) 영업을 진짜 잘하는 사람입니다. 단 제가 정말로 좋아하고 진심으로 권하고 싶은 것에 한하기 때문에 그 능력이 저에게 경제적으로 득이 될 것은 일절 없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입니다.  뭐, 괜찮아요 돈은 다른 능력으로 벌고 있으니.. (작고 귀여운 돈... 오열)


두괄식이 임팩트 있죠. 이런 제가 지금부터 혼을 갈아서 영업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매거진에 기고를 하고 있는 어느 분의 작가 소개를 보면 ‘읽으면 듣고 싶어 지는, 음악에 관한 글’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비장한 마음으로 그 목표를 하루만 빌릴까 합니다.  정말, 이건 봐야 됩니다. 진짜로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에 이렇게 표현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음악이 사용된 무용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제목만 말해도 괜찮아요, 이 제목을 듣고 음악 없는 안무만 떠올린다든지 발레가 수반되지 않은 연주만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후자는 조금 있을 수도 있겠군요!)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그런 건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영업을 위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 많으니 과감히 생략합니다. 시간이 없어요(허뤼 허뤼 클랩 클랩)!!! 곧 크리스마스라서!!!!!!

사실 크리스마스는 특정 종교의 기념일이지만,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종교를 초월한 전 국민의 행사기도 합니다. 아마 이는 신교와 구교를 합치면 국민의 2/3 가까이가 기독교인인 미국 문화를 답습한 영향이 클 거예요. 우리가 아는 산타할아버지의 모습이나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여러 관습들 역시 그렇고요. 새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녹아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문화적으로 즐기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 때마다 호두까기 인형을 환장하고 보는 이유는 이 작품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일단 화려함과 재미가 먹어주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깊이를 모르고 봐도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미국 돌려까는 거 아니에요!!) 아 진짜 봐야 한다니까요!


물론 발레라는 것이 진입장벽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단 크게 심오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아서 연령을 초월한 관람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음악에는 음이 수직 혹은 수평적으로 울리는 특정한 형태에 따라서 지시하는 바, 혹은 표상하는 바가 각각의 시대와 문화권마다 존재합니다. 가령 오늘날 조성음악 체계에서, 도미넌트 화음이 나온다는 것은 대체로 종지로 향하겠다는 시그널로 간주되는 것처럼요. 이를 음악어법이라고 말하는데, 고전발레에도 유사한 시스템이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극 전개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감정의 표현은 유사하게 통일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령  팔을 뻗었다가 다시 가슴으로 교차하며 모으는 동작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제법 직관적이죠? 하지만 음악이 그러하듯, 비언어적인 요소로 언어만큼 ‘이야기’를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사도 없이 몸짓으로만, 아니 몸짓의 한층 정제되어 예술적으로 가공된 형태인 ‘춤’으로만  어떤 기승전결을 전달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죠. 물론 발레를 보기 전에 작품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면 좋겠지만, 하다못해 프로그램 노트라도 한번 읽으면 좋지만, 대개의 작품들은 그러지 못할 상황도 전제하여 만들어졌기에, 짧은 시간에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가령 “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시간은 벌써 세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셔도 왜 더 후끈후끈 하니”한 것을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으로만 전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죠? 그래서 발레, 적어도 우리가 발레, 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많은 고전발레와 낭만발레 작품의 스토리는 많이 꼬이고 얽혀있지 않습니다. 그냥 어린이가 읽는 얇은 동화책 정도죠. 요는, 이 발레작품을 강추하는 데 있어 서사가 중요한 요인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야기가 단순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과 귀가 즐겁다는 점입니다. 다시 <호두까기 인형>으로 돌아가서, 이 이야기에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안무에 따라서 어린이 무용수의 군무를 볼 수도 있는데,  군무든 독무든 어린이 무용수들의 춤은 어른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재미를 줍니다. 신기하고 대견하고 일부 소름 돋고 아무튼 그래요. 옥류관 남한 1호점 개점 소식이 들릴 정도로 지금은 남북 화해의 무드가 어느 때보다도 진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주말 아침에 방영되는 <남북의 창>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북한의 소식을 전해 듣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보았는데 지금도  방영되고 있네요.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장수프로군요!) 그 프로에는 항상 당 차원에서 주관했을 어린이들의 공연을 보여줬는데요, 그게 그렇게 경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저 쪼그마한 아이들이 어쩜 저렇게 잘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거의 학대당하다시피 트레이닝받았을 테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는 매스 게임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린 무용수들의 춤도 유사한 이유로 눈물겹게 아름답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교와 체형, 그러나 그 나름의 완벽함과 최선. 유나킴 님이 올림픽에서 모두를 발라버리던 최전성기(아 물론 그분은 평생이 전성기십니다)의 작품이야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지만(오열), 주니어 시절 초기의 대회를 보아도 코끝 찡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리고 약간 프로듀스 101에 나오는 연습생 보는 기분도 들고... (갑분프.. 모두 데뷔길만 걷자!!!)


눈과 귀의 즐거움의 정점은 디베르티스망 부분입니다. 다양한 민족들의 춤을 보여주는 이 부분은 사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짙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화려하고 멋진 데다가 그 특징을 잘 살렸기에, 좀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을 보는 동안에는 금발 벽안의 양인이 저에게 “이봐 칭챙총~”이라고 불러도 ‘그래 무식한 코쟁아~’라고 생각하며 신비스러운 동양의 미소를 지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 문단은 정치적 올바름을 포기한 부분입니다) 그래! 인식이란 무릇 그 자체로 폭력이지! 삶을 통하여 그 폭력적인 인식을 어쩔 수 없이 재생산하게 된다면, 적어도 이 정도 작품은 만들어야만 한다!!! 사실 이건 뭐라고 말을 해도 부족하고, 그냥 한번 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디베르티스망이 그렇듯이 이야기 전개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부분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무료체험분까지 받아보실 수 있고요, 만약 보시고, 맘에 안 든다 하시면 안 보셔도 됩니다. 그런데 이건 보신 분들이 늘 재관람을 하셔서 재관람률이 정말 높고요,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요, 상담원 연결이 어렵습니다...(아무말)


발레기 때문에 당연히 눈과 귀의 즐거움을 논하였지만, 사실 이 작품은 음악만 들어도 어메이징 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인데, 저작권이 강화되어서(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이런저런 업장에서 틀 음악이 없을 때, 저작권이 만료된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을 선곡한다면 정말 효과적일 겁니다. 너무나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그냥 빈티지 느낌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는데, “찬란한 색채의 향연”이 무엇인지를 바로 느낄 수 있어요. 정말, 사운드적 오나먼트라고 할까요? 이 음악을 트는 것 하나만으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마다 꼬마전구가 반짝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효과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데, <호두까기 인형>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질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전기를 많이 소모하여 환경을 해치는 조명 장식을 지양하고, 음악적 장식을 활용하면 어떨까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더더욱 아무말)


그러니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야 한다면, 이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건 평생 동안 연말을 장식한 꼬마전구를 사주는 셈이 될 겁니다. 꼬마전구라고 하니까 좀 없어보여서 급하게 보석이라고 수정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이 곡의 오케스트레이션과 음향들에서는 불가리의 유색 보석이 연상됩니다. 그러니 이 작품을 경험하게 해주는 건 평생 동안 착용할 찬연한 보석을 선물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에요. <호두까기 인형> 공연의 티켓, 얼마나 근사한 크리스마스 선물일까요! 혹은 미리 준비를 하지 못했다면, 그런데 어디 가기에는 사람도 많아 정신이 없고 괜찮은 곳은 진즉 풀북이고 갈만한 곳에는 터무니없는 연말 전용 가격이 붙어 있다면, 연인 혹은 썸남 썸녀에게 슬쩍, 우리집에서 넛크래커ㅡ꼭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에겐 너무 익숙한 문화라는 듯이ㅡ보면서 라면 먹고 갈래? 이렇게 던져보는 거죠. 스테이크 말고 라면이 좋아요. 나에게 겨울에 넛크래커를 보는 일은 라면을 먹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진짜로 라면을 준비하면 안 되고요!) 어릴 적부터 겨울마다 가족들과 넛크래커를 보러 갔던 척하면 약간 뭐랄까 좋은 아비투스를 가진 고런 느낌을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재수 없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아마 이 작품을 보면 다른 발레도 보고 싶어 질 거예요. 차이코프스키의 또 다른 발레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이어서 보는 것도 좋겠지만, 안무나 연출이 다른 <호두까기 인형> 프로덕션을 찾아봐도 좋을 겁니다. 곡이 워낙 수작이어서 정말 다양한 안무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발란신의 안무가 가장 인기인 것 같은데, 안무 뿐만 아니라 무대나 의상 같은 연출에 따라서도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을 거예요. 정말. (영업의 기본은 영업맨의 확신에 찬 태도죠.) 저의 열의에 찬 영업 글을 읽어주셨으니 답례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영업의 기본은 똘똘한 답례품이죠.)  바로 다음의 영상입니다. 물론 제가 기여한 것은 아니지만......

Mariinsky Theatre in St Petersburg, December 2012
Choreography by Vasily Vainonen  
Cond. Valery Gergiev,  MariinskyOrchestra


가서 보면 또 그 나름의 엄청난 감동이 있지만, 영상을 통해서 보아도 그 감동의 가성비는 거의 샤오미 급입니다. 이게 왜 그냥 무료로 풀렸는지 모르겠는데 가족과 대화해보고 이런 결론이 났어요. 저들도 만들고 보니 너무나 대작이라 “이거 안 본 사람 없게 해 주세요” 하는 염원으로 푼 것이 아닐까! 카메라워크가 살짝 난잡한 감이 있어서 풀 동선이 덜 보이지만 덕분에 표정 연기 등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어린 무용수들의 조금은 어색하지만 노력하는 것이 드러나는, 풋풋한 표정연기도 귀엽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또 어떻고요. 게르기에프가 단원들 때려가면서 조련한 것 같은 사운드(저는 이렇게 말하지만 폭력은 개그의 소재가 되면 안 됩니다), 어디 가둬놓고 물이랑 마른 빵만 주면서 연습시킨 것 같은 연주를 들으면, 역시 감동적인 작품은 돈만 갈아넣어서 될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갈아넣어야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지만 착취는 개그의 소재가 되면 안 됩니다. ) 기획과 자본으로는 한계가 있고요, 사람의 피땀이 들어가야만 이런 감동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발레가 어렵다면, 아주 어린아이가 있어서 같이 보기 어렵다면, 디즈니의 수작 <판타지아>의 한 부분을 추천합니다. 제2장에 넛크래커 모음곡 중에서 디베르티스망 부분을 중심으로 춤곡들을 모아놓은 건데요, 언젠가 이 부분을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었더니 음악을 먼저 만든 건지 영상을 먼저 만들고 음악을 붙인 건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음악에 착붙게 만든 애니메이션이고, 이 역시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갈려 들어간 작품이기에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Disney <Fantasia>(1940)
Nutcracker Suite: 14'25"~ 




매거진의 이전글 지극히 개인적인 음악 사용 설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