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강박에서 벗어나기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와 잠깐 짬을 내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최근 업무 중 깨달은 노하우를 내게 나눠주었다.
목소리가 점차 팽팽하게 조여진 하이톤으로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내가 다 아는 내용이라 재미가 없었다, 또 내게도 어떤 관점을 자꾸 주입시키려는 것 같아 다소 불편했다.
그래도 나름 잘 들어주었다.
친구의 얘기가 끝나고 적막감이 어색했기에 내가 리액션을 취해야 한답시고 말을 꺼냈는데
그 긴 이야기를 듣는 중 쌓인 피로감이 앞서 그만 부정적인 말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근데 원래 다들 그렇게 하는 거 아니냐며, 또 어느 관점의 부분에서는 반박하는 말까지.
친구의 목소리가 한껏 느슨해지더니 갑자기 자기 성찰을 시작했다.
자기는 종종 깨달은 점을 굳이 남한테 막 알려주고 싶어 한다며...
아......
그냥 끝까지 잘 들어주기만 할걸, 내가 괜한 말을 덧붙여가지고...
그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그 상황이 계속 떠올라가지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도 잠을 못 잤다. 또 떠올라가지고.
한 달 뒤에도.
이런 후회스러운 상황들이 차곡차곡 쌓여 피곤해 죽겠지만 잠을 청하지 못하는데 아주 큰 도움들을 주고 있다.
최근 오랜 연을 이어온 또 다른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했다.
친구는 최근에 벌어진 각종 사건들, 그 속에서의 감정, 또 평소 본인의 철학 등 많은 이야기를 대화의 욕망으로써 마구 분출하며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 친구가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나는 친구의 무겁고 가벼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다양한 속도와 고도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그저 묵묵히,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렇지', '그랬겠다', '정말?' 등의 매우 심플한 리액션만 해주고, 주로 들어주었다.
사실 속으로는 더 영혼 담긴 고퀄리티의 리액션을 해주고 싶었다.
또 무거운 이야기 뒤엔 적당한 위로의 말로 온기를 전하고 싶었지만,
리액션이 약한 사람으로서, 말재주가 썩 좋진 않은 사람으로서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속상했다.
내가 또 괜한 말을 던져 그날 밤 잠 못 이룰까 봐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친구의 모든 말이 끝나고 살짝은 어색할 수도 있는 적막감이 조용히 흘렀다.
내 시야에 보이는 맞은편 반짝이는 빛을 그저 바라보았다.
그런데 친구가 마지막에 본인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묵묵히 들어줘서 참 좋았다고.
내심 기뻤고 안심이 되었다.
때때로 리액션은 상대를 좀 더 편안하게 해 주고 분위기를 한껏 무르익게 할 순 있겠지만,
그에 대한 강박감은 조금 놓아주어도 될 것 같다.
이야기 이후 별다른 리액션이 없다면 그 적막감이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의 말을 곱씹는 의미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