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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니 Jul 29. 2022

2112 삼십이립(三十而立) 퇴사 1

짜릿한 퇴사와 동시에 외노자는 해당 비자를 상실하게 된다.

직장인에게 "퇴사하겠습니다"를 선언하는 때만큼 짜릿한 순간이 있을까


인사담당자가 묻는다. 왜 하필 지금이죠?

다가오는  , 저의 한국 나이는  서른입니다. 새로운 도전하고 싶어서요. 라며 눈을 초롱이며 패기롭게 말을 던졌다.


1.5개월 미리 말을 한 덕에 내가 원했던 2021년 마지막 날에 깔끔히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퇴사 이유에는 "개인발전" 네 글자를 기재했다. 사실 엄청 멋있게 휘갈겨 쓰고 싶었지만 약간의 재수 없음이 스스로도 느껴졌기에 최대한 담백한 필체로 또박또박 썼다. 다들 날 부러워하고 멋지다고 해줬다.



드디어 퇴사 날, 한 해의 마지막 날인 만큼 오전 근무만 하고 점심시간에 다 같이 피자파티를 열고서는 오후에 각자 해산했다.


책상 위 필요 없는 물건들을 동료들에게 나눔 하고 아무도 가지지 않은 물품(가령 창립기념일로 나눠준 회사 머그컵이라던가...)을 쓰레기통에 잘 숨겨가며 처박았다.


고별을 하고자 각 팀을 돌아다녔다. 휴가를 내 나오지 않은 사람이 상당했다.

평소 좋아했던 카리스마 넘치던 옆 팀장님께서 잠깐만 기다려보라며 귀한 회사 제품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그렇게 동료들에게 받은 선물과 마지막 짐들을 양손으로 껴안은 채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새파란 하늘, 서늘한 바람, 갈변된 상하이의 플라타너스 나무잎, 이미 휴가모드에 들어간 한산한 거리.

씩씩하게 회사를 나오자마자 두려움과 외로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 광경도 이제 당본 간 볼 수 없기에 사진첩에 담아본다.


누군가가 그랬다.

회사는 배와 같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배는 앞으로 간다며.


나는 나름 호화로운 대형 여객선에서 내렸다.

이제는 철저히 나 혼자다.

이 배에서 내려 내가 원하는 만큼 행선지에서 쉬다, 이내 나만의 작은 배 하나를 구해 직접 키를 잡고 항해해 나가야 한다. 짐은 거의 없다. 비가 오면 판초를 입고 홀로 풍파를 견뎌야 한다.



중국에서 외노자가 회사를 나오면 10일 내로 "인도주의비자"를 신청하여, 최대 30일까지만 그 나라에 머물 수 있다. 30일 내로 이직을 하든,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든, 그게 아니라면 떠나야 한다. 그 나라의 비즈니스 성장에 이바지할 수 없으니 쫓겨나는 거지 뭐. 외노자는 멋대로 퇴사를 하면 안 된다. 여차하면 바로 이민가방 싸들고 고향길에 올라야 한다.


인도주의,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인종, 민족, 국가, 종교 따위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꾀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사상이나 태도.


가뜩이나 퇴사를 하면 만감이 교차하는데 비자명이 한술 더 떠 감정에 BGM을 입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온전히 자립하게 되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의 나이, 나는 멋지게 퇴사를 했으므로 앞으로도 정말 내 꿈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허세에서 끝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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