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랑새는 독일에 있나 제1화: 나를 독일로 이끈 사람들 (1)
독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왜 독일로 오게 되었냐 묻는 질문에는 몇 가지 전형적인 답변들이 있다. 보통 독일어에 대한 흥미, 자동차, 맥주와 소시지, 자연환경, 독일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유럽 여행의 편리성, 또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이들 교육 때문에 등등, 구체적이고도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독일어에 대한 흥미로 '독일의 세계'에 입문한 케이스다. 직접 가보면 언어도 빨리 배울 거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주말에는 틈틈이 옆 나라 여행도 가고, 그렇게 한 1년 잘 쉬고 놀다가 한국에 돌아가서 당시 계획했었던 공부에 몰두하는- 나름대로 쌈박, 깔끔한 단기 해외 거주 플랜을 가지고 이 나라에 왔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해외 살이라는 것이 아무리 내가 완벽하게 준비 한다한들 그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기가 사실 어렵다. 오히려 '아 다 때려치우고 그냥 돌아갈까' 하는 내면의 물음이 자주 찾아온다. 나 같은 경우 이럴 때마다 그때그때 버티며 삶의 조각들을 계속 이어 붙이기 하다 보니 지금까지 여기 살게 된 것인데, 순탄치만은 않았던 나의 독일 살이를 계속 버티게 해 주었던 중요한 순간이 세 번 있었다.
첫 번째 순간은 나의 첫 독일인 친구이자 내 정신적 지주이며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진심을 다해 조언과 도움을 주시는 독일인 아저씨와의 우연한 대화에서였다. 10년도 더 된 아주 오래전 일이다. 아저씨에게는 내 나이 또래의 딸이 두 명 있는데, 그중 둘째 딸의 당시 남자친구가 아저씨의 집에서 며칠 묵고 갔다고 했다. 뭐 그럴 수 있지. 여긴 개방적이니까. 무심코 넘겨들으려던 찰나, 그 남자친구가 손님방이나 거실이 아닌 그 딸의 방에서 자고 갔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저씨를 향해 '뭐라고요???'라고 소리치며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그걸 허락할 수 있으세요?'라고 되물었을 때, 아저씨의 첫마디는 단호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자동차나 공공장소에서 몰래 관계하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아.
아저씨의 설명인즉슨 이랬다. 어차피 애정행각을 못하게 단속해봐야 젊은 사람들은 어디서든, 어떻게 해서든 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가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연스러운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서, 내 아이들이 공공장소 또는 으슥하고 위험한 장소에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보다는, 내 지붕 아래 안전한 곳에서 하게 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젊었을 때 어땠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어."
나는 갑자기 신촌 대학가에 즐비한 현란하고 조잡한 모텔 간판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불편해할까 봐 남자친구의 존재나 데이트 사실을 숨기고 감추거나, 어쩌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날이면 이리저리 어른들의 구미에 맞게 이야기를 각색, 재단하기 바빴던 내 지난날들도 떠올랐다. 내 욕구, 내 감정은 나 스스로에게도 늘 뒷전이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내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하던 순간이었다.
아저씨는 독일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사람으로 오래 공직에 있다가 지금은 은퇴 후 연금을 받아 생활을 하고 계신다. 일반적인 독일 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때, 아저씨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어쩌면 가끔은 좀 딱딱한,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다. 그런 아저씨가 당시 스무 살 좀 넘은 나를 앞에 두고 이런 주제의 대화를, 그리고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나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도 신기방기 상상 이상이었다. 와 진짜 멋있다- 이런 부모상도 있구나! 뭔가 한 줄기 빛이 순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나도 언젠가 저런 부모가 되고 싶다. 자식에 대한 덧없는 기대나 소망에 매달려 내 자식을 외롭게 하기보다는, 진심을 다해 내 자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런 성숙한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봤다.
아저씨와의 이 대화 덕분에, 나는 독일어도 독일어지만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독일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아저씨 같으려나? 하는 환상과 함께. 그리고 거기 가서 살아보면 나도 아저씨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는 자연스레 덤으로 따라왔다. 그 엄청난 기대가 독일 정착 초기에 야금야금 무너질 때마다 아저씨를 가끔 원망한 적도 있긴 있다 ('아저씨! 왜 그때 쓸데없이 너무 멋있고 난리셨어요?' 최근에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해 드리니, 아저씨는 그 대화가 기억이 안 난다고 멋쩍어하셨다 허허). 아저씨가 내 인생의 롤모델들 중에 한 분임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막상 독일에 와서 보니 모든 독일인이 아저씨 같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독일에 오기만 한다고 내가 저절로 성숙하고 관대한 인간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