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랑새는 독일에 있나 제2화: 나를 독일로 이끈 사람들 (2)
이 독일 땅에서 꼭 더 살아볼 테다! 하는 나의 의지를 활활 불태워주었던 두 번째 계기는 내 안의 여성 차별과 속박을 스스로 직접 마주하면서부터다. 교환학생 시절 만난 남친이자 현 남편이 이 부분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남편과 막 데이트를 시작하던 옛날 옛적 어느 날, 남편(이자 당시의 남친)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며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오븐에서 갓 꺼낸 먹음직스러운 연어와 감자로 만든 크림 그라탕이 그 날의 메뉴였다.
"내가 덜어줄 테니 잠깐만 기다려-"
남친이 그라탕 그릇의 딱 중간 지점에서 세로로 반, 그리고는 가로로 반을 망설임 없이 삭,삭, 잘랐고, 곧 두 접시에 그라탕 1/4이 나란히 담겼다. 공명정대하게 그라탕을 서빙하는 그를 보며 나는 머릿속이 잠깐 복잡해졌다. 그동안 바깥에서 누구와 식사를 하건, 가족들과 밥을 먹건, 여자인 나는 늘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 동석한 남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적은 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차피 여자는 남자보다 적게 먹으니까. 많이 먹으면 살찌니까. 그리고 여자는 살찌면 미워지니까.
"이걸 내가 어떻게 다 먹어- 너무 많아. 왜 너랑 나랑 똑같이 줘? 난 여잔데."
"그래서 뭐? 사람 2명이니까 2인분이지.”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일단 먹어보고 다 못 먹겠으면 내가 도와줄게, 걱정 마."
우리나라 말에도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먹는 문제가 얼마나 기본적이고 민감한 문제인데,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그동안 괜히 남자, 여자 구별해서 복잡하게 살았나 싶었다. 어차피 다 같은 사람인데. 우선 같은 양을 똑같이 받아 맛있게 먹고, 한 사람이 먹다가 남기면 그다음에 더 먹고 싶은 사람이 그 남은 음식을 마저 먹겠다는 이 공평무사함! 홀딱 반해버렸다.
(다 못 먹을 것 같다는 내 처음 생각은 오랜 세월 내 안에서 자라온 생존 방식/내숭에 기인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야금야금 먹다 보니 내 그라탕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도움 따위- 필요 없었다.)
어느 날은 한국 교환학생들과 모처럼 모여 커피를 마시며 놀고 있었다. 다 여자들만 있던 터라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와중에 치마를 입을 때 속옷을 가리기 위해 입는 속바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 한 친구가 말하기를, 몇 년 전 자기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 동네에서 한 젊은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길에서 즉사를 했는데 그 여자가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를 입고 처참한 몰골로 죽었단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급하게 오느라 시신을 덮어 줄 흰 천을 깜빡했다고. 그래서 이것저것 점검 후 경찰들은 죽은 여자의 그 긴치마를 그대로 뒤집어 머리까지 올려 시신의 얼굴을 가렸다는 것이다. 결국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여자가 어떤 팬티를 입고 죽었는지 볼 수 있었다는 끔찍한 이야기.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이 올라오려던 찰나, 그 친구의 덤덤한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을 후려쳤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긴치마를 입을 때도 절대 속바지를 빼먹지 말라고 하더라고."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러니까 차에 치어 짧은 인생을 마감한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데, 여자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그런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더라도 일단 내 팬티가 남들 앞에 안 보이도록 지금부터 더더욱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된다는 게 이 이야기의 교훈이라는 건가? 나는 얼굴로 삐져나오려 하는 억울함을 간신히 참았다. 남의 집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는데 내가 왈가왈부하기에도 그렇고. 어차피 결국에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아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저녁에 남친을 만나 낮에 들었던 그 이야기를 속상한 마음에 모조리 토해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답답하고 슬픈 감정은 어느새 뭔지 모를 분노로 바뀌어갔다.
"... 아니 죽었는데. 여자는 죽어서도 내 팬티가 보일까 그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이게 지금 결론이냐고!"
사실 그 날 나의 분노는 경찰보다는 딸의 속바지 단속에 더 치중하는 그 아이의 어머니를 향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치마를 입기 시작할 때부터 외출을 할 때마다 현관까지 쫒아나와 치마가 얼마나 짧은지, 그리고 치마 안에 그 망할 놈의 속바지는 입었는지 늘 단속했던 우리 엄마 생각에 더 그랬을 것이다.
남친도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를 냈다. 그런데 화를 내는 방향이 나와는 달랐다.
"아니 무슨 경찰이 그 모양이야? 시신 덮을 천을 안 가져가는 게 말이 돼?"
"경찰? 아니- 경찰은 시골 경찰이니까... 뭐 깜빡했을 수도 있지."
"시신 처리를 하러 갔으면 꼭 가져가야 하는 건 당연히 챙겨서 가야지. 일 똑바로 안 해서 죽은 사람의 존엄성을 그렇게 훼손하는 게 어딨어."
인간의 존엄성. 솔직히 나는 그 단어를 누군가가 이렇게 실생활의 대화에서 쓰는 것을 그때 처음 들어봤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죽은 여자가 치마 속에 뭘 입었는지 온 동네에 다 알려지게 된 건 온전히 경찰의 부주의한 대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낮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들, 속바지 꼭 챙겨 입으라 말해주었다던 그 친구의 어머니까지도 경찰의 잘못은 아예 논외 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여자라는 이유로 이야기를 듣자마자 억울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더 스스로를 단속하고 옥죄는 방법에만 눈을 돌렸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우리가 죄인인냥.
그 여자가 속바지를 입지 않아서 죽어서까지 그런 처참한 꼴을 당한 게 아닌데, 왜 우리는 속바지에 집착했어야 했을까. 그 여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 혹시나 내가 그 여자처럼 어느 날 차에 치어 죽게 된다 하더라도 무지한 경찰이 내 치마를 머리 위로 끌어올릴까 봐 지금부터 속바지를 겹겹이 입어대는 그런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어떤 어른이 친히 걱정이 되어 망언을 한다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리고 그런 망발에 괜한 감정을 낭비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지금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도 모르고 옆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타자기를 탁탁 탁탁 두드리는 저 헐렁한 빙구 남편이 과거에 한 말과 행동들로 나에게 이런 지대한 영향을 미쳤었다니 새삼 놀랍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생각하는 힘도, 상황도, 그리고 성격도 바뀌어서 지금의 내가 저 상황들을 다시 마주한다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라서 늘 조심해야 하고, 여자라서 하면 안 되고, 여자라서 꼭 해야 하는 것들이 나도 모르는 새 주입되어 내 안에 꽤 많이 자리 잡고 있었던 10년 전의 나에게, 남친의 공평한 마인드와 합리적인 태도는 꼭 배우고 싶은 새로운 세계였다. 여자이기 이전에 공평한 대우를 받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사는 한 인격체로, 나 스스로도 그렇게 거듭나고 싶었다.
자칫 이 글에서 독일 남자는 모두 공평하고 대단한 인류주의자인 듯 일반화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다. 독일 사람 중에도 보수적이다 못해 마초적이고 아예 백인 남성우월주의자인 사람들도 많고, 한국 남자 중에도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 구조 안에서도 남녀평등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동안 나의 경험만을 놓고 본다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들과 보다 깊이 있는 남녀평등과 관련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기회가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았고, 그런 주제도 불편해하지 않고 '남성 대 여성'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화를 이어가는 다수의 보편적인 현지 남성들의 진지한 태도에 매우 감명받았던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