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니키키 Apr 19. 2020

나에게 쉬라고 말해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내 파랑새는 독일에 있나 제3화: 나를 독일로 이끈 사람들 (3)

    유럽에서의 내 석사 생활 첫 1년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하루하루가 허우적거림의 연속이었다. 다른 학생들이나 교수님들에 비해 내가 가진 배경지식의 양이 너무 차이가 났고 (내 전공은 유럽 정치였다), 습득량도,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 자체까지 유럽인들과 나는 너무나 달라서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저만치 뒤처져 마지못해 겨우 쫓아가는 수준이었다. 이 공부 관둬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 하면서도 쏟아지는 과제와 수업을 쫓아다니며 버텨가기를 1년 반, 마지막 학위 논문 학기가 왔다. 따로 수업은 없고 6개월 동안 논문을 완성해서 제출하는 말 그대로 '논문 학기' 였기에, 학생들 대부분은 자기 나라,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논문 작업을 했고, 나와 집이 학교 근처인 독일인 친구 A만이 학교에 남아 논문 작업을 했다.  


    A는 조용하지만 자기 의견을 낼 때는 솔직했고, 공부도 운동도 굉장히 열심히, 또 잘하는 친구였다. 그리고 누가 독일 사람 아니랄까 봐 항상 하루의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우고 계획한 대로 실행하기를 좋아했는데, 매일 같이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애의 하루 계획표에 따라 생활하게 되었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오전 9시                      도서관 출근

9시 - 10시 30분         논문 작업

                                   커피 타임 (10분)

10시 40분 - 12시       논문 작업

12시 - 1시                 점심시간

1시  -  4시                   논문 작업


    오후 4시가 되면 A와 나는 짐을 싸서 귀가했고, 다음 날 똑같은 패턴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단조롭지만 알차게 계획한 논문 학기 생활을 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A와 함께 하면서 내가 너무 신기했던 것은, 계획표에 들어있는 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4시 귀가 시간을 귀신같이 지키는 A의 한결같은 태도였다.


    나의 경우, 계획을 짤 때 그 날 해야 할 나의 다짐과 목표를 줄줄이 나열하는 식이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갖기는 하더라도 혹시 공부 진도가 너무 안 나가면 쉬는 시간은 남는 시간으로 대신 사용할 시간에 불과했었다. 근데 이 아이는 공부하다가 진도가 안 나가더라도 쉬는 시간이 되면 반드시 그 쉬는 시간 10분을 지켰다.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에서 나와 학교 근처 공원이나 뜰에 앉아 챙겨 온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 시간조차도 1시간을 꼭 다 채우고 나서야 도서관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논문 진도가 안 나가거나 마음에 차게 써지지 않는 날에는 내가 '음- 난 안 쉬어도 되는데'라는 뉘앙스를 몇 번 풍겨도, A는 '지금 쉬는 시간인데? 쉬어야지-' 라며 나를 꼭 데리고 나갔다. '커피 다 마셨으면, 밥 다 먹었으면 얼른 들어가서 하던 공부를 마저 해야지 왜 이러는 거냐 너...'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조급한 마음이 들기는 해도 사실 공부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렇게 못 이기는 척 따라나가더라도 늘 같이 정한 시간만큼 '쉬다가' 들어오곤 했다.

작년에 연구 프로젝트 차 함께 서울에 온 A. 한국과 독일이 이렇게나 다를 줄은 몰랐다며 아주 신기해했다.


    어느 점심시간, A와 식사를 마친 후 한가롭게 이야기하다가 결국 쉬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난 사실 이렇게 쉬는 시간 안 빼먹고 갖는 거 되게 신기해."


"왜? 사람이 쉬어야지. 어떻게 계속 앉아서 공부를 해."


"그건 그렇지- 근데 공부든 뭐든 하다가 지쳐서 잠깐 쉴 때는 있어도, 이렇게 의식적으로 계획해서 쉰다는 게 너무 신기해. 독일에서는 혹시 학교 다닐 때 이렇게 배워? 계획 세울 때 쉬는 시간도 꼭 넣으라고?"


 A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너네 나라에서는 쉬는 시간에는 꼭 쉬라고 가르쳐주는구나. 놀랍다.  


"주어진 시간에 할 일을 다 마치도록 집중해서 하고, 쉴 땐 쉬어야지."


"그래- 그런데 그 시간에도 할 수 있는 만큼 더 하면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잖아."


내 말을 듣고 A는 진심 어린 얼굴로 나에게 되물었다.


"그러다가 과로로 죽으면 어떡해?"


음- 그러게... 말문이 막혔다. 당시 비록 남들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어도 '성실함' 하나로 무장해서 버티고 있던 나에게, A의 걱정 가득한 반응은 실로 태어나서 처음 보고 듣는 그런 종류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저렇게 생각이 많아? 별 이상한 질문을 다하네.'

     



    학교 뜰에서 함께 앉은 A가 나 자신보다도 더 내 몸을 걱정해주던 그 날 이후로,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내가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게 더 놀랍다. 사실 그때는 몸 축나는 거 전혀 몰랐을 때라 '죽으면 죽는 거지'라는 끔찍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왜냐하면 난 안 죽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때 이후로 쉼 없이 공부하고 일하며 달려오다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과로사하거나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주변에서 직접 목격하고 나서야, 문득문득 그때 내가 완전히 미쳤었구나 생각한다.


    난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살다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죽고 싶다. 그리고 이런 바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단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다른 것에 쫓겨 몸과 정신을 축내는 짓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깊게 배었는지 나는 아직도 뭔가에 몰두하다 보면 의식적으로 휴식을 갖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주나.


    한국이든 독일이든, 누구든 자기 몸 하나만은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살 수 있길, 그리고 누구나 그런 '쉼'이 삶의 한 부분으로 당연하게 여겨지고 존중받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쉰다는 게 뭔지 제대로 가르쳐준 친구 A에게 새삼 감사의 인사를.





매거진의 이전글 감자 그라탕, 속바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