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의 기록 Oct 26. 2022

영화 속 문학 읽기

문학 읽는 시간에 만난 영화적 순간



영화와 문학 읽기가 입력과정이라면 읽은 후 감상 나누기는 출력과정이다. 말하기와 쓰기라는 출력. 간단히 좋다 나쁘다 말하거나 SNS에 짧은 감상평을 남긴다. 혹은 영화와 원작을 비교한 200자 원고지 열 장 분량의 글을 쓰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나의 작품을 책과 영화로 만난 후 모임에서 감상을 나눌 수 있다. <영화 속 문학 읽기> 모임에서는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면서 한 작품을 세 번 만난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다니, 생각만 해도 벅찬 일이다. 혼자 한다면 오래 할 수 없다. 하지만 함께 하면 할 수 있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주목하는 것이 저마다 다르듯 영화와 문학 사이를 거니는 풍경은 저마다 다르다. 활자에 익숙한 눈이 있고 영상에 익숙한 눈이 있다. 때문에 하나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주관적 체험일 수밖에 없다. 주관적 시선을 나누면서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여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것. <영화 속 문학 읽기>를 하는 이유다.      



약속된 시간에 온라인에서 모여 서로의 감상을 듣고 말한다. 한쪽으로만 치우쳤던 나의 시선을 옆으로 돌려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본다. 네모난 화면에 비친 시선과 시선을 교환하고 눈맞춤 하면서 형성되는 생생한 실감이 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글을 쓸 때와는 또다른 집중력을 요구한다. 상대의 말에 경청해야 하는 집중. 하지만 글과 달리 말은 휘발된다는 점에서 홀가분하다. 엉켜있던 생각 그대로 발화될 때, 그것이 '아무말'이 될지라도 그 아무말이 지닌 편안함의 미덕이 우리의 생각을 좀 더 열어주기도 하니까.    



모임이 마무리라고 여겼다. 서로의 감상을 듣고 나의 감상을 말하며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작품을 해석한 저마다의 시선 부딪히고 충돌하면서 나의 이해를 허물고 새롭게 보게 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이해는 불완전하며 불완전해서 아름답다. 다음을 기약하게 되니까. 오해는 이해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나의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을 아낀다.  함께 읽기란 작품의 여정을 함께 걷는 일.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헤매며 얻은 경험을 나누는 일이다. 함께 헤매면 길을 잃는 게 아니라 길이 만들어 진다. 그리하여 모임은 작품 읽기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 된다.  



개별적인 시선과 말은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다. 텍스트는 저마다 고유한 형태로 자리한다. 개별적으로 남는다면 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개별적인 텍스트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문학을 깊이 알수록 나를 더욱 알아가는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나? 다른 이는 그냥 지나쳤던 대목에 내가 반응한다면 그것은 나를 구별하는 지점이 된다.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시간이다. 아마도 그것은 나에게 내재한 무언가를 문학이 표현해주기 때문이리라. 아 맞아. 바로 그거였어. 그렇게 포획된 문장은 나를 구성하고 설명하는 텍스트가 된다.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는 발견과 새롭게 알게 된 나를 만나는 기쁨. 문학에 대한 앎은 나에 대한 앎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면서 더 멀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일 수 있도록. 자신이 지닌 고유한 시선을 지킬 수 있도록 지켜본다. 나의 시선을 지키고 목소리를 보다 단단하게 키워갈 수 있도록. 내가 왜 다르게 생각하는지 점검하는 기회가 되어서 나의 입장을,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본다.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하여 알게 된다. 이것은 소통과 공감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보다 정확하고 선명하게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 다름을 확인하면서 나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고유한 감상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렇게 될 때 나의 목소리는 좀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 진다.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그렇게 홀로 또 함께 할 수 있다.      



문학을 읽으면서 만난 영화적 순간이 있다. 어떤 문장이 나를 환한 빛을 비추는 순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보게 하는 환기의 순간. 나의 잠들어 있던 기억을 꺼내는 순간. 영화와 문학이 재창조한 삶을 나누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순간. 뒤죽박죽 떠오른 생각의 편린이 퍼즐조각처럼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대화가 주는 활기와 생생함은 모임의 리듬을 만들고 리듬을 타며 어떤 이야기는 확대되고 깊어진다. 목소리가 떨리고 긴장하여 더듬거린다. 침묵하다가도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줌인 줌아웃. 모임이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러한 순간이 우리를 묶어준다. 영화가 끝나면 잔상이 남듯이. 흩어진 시공간이 하나로 수렴되는 순간. 이것이 바로 영화적 순간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다 계획이 있거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