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의 기록 Aug 30. 2023

위대한 소설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루키는 주인공의 말을 빌려 『위대한 개츠비』를 예찬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단 한 번도 실망한 적 없으며, 매번 감탄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당시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았던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위대한 개츠비』를 그토록 위대하게 만드는지.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가 1925년에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유럽이 전후복구로 정체되는 동안 미국은 세계 경제 중심지로 떠오르며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하게 부를 쌓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가난해도 근면 성실하면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한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인물들이 출현한다.

 

개츠비는 짧은 시간 안에 막대한 부를 이루고 대저택을 소유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인물.  어떻게 가능했을까?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13쪽, 김영하 역)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11쪽, 김욱동 역)


희망이라는 재능을 뒷받침할 능력과 용기, 투지가 개츠비에게 있다. 자수성가 신화와 어울리도록 과거를 윤색하고 재구성한다.  제임스 개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 아니라 부유한 가정의 태생이라고. 과거를 간단히 바꾸듯, 그는 속임수에 능하다. 개츠비가 이룬 부는 불법적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언급된다. 소설의 화자 닉 케러웨이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어서다. 닉은 아버지의 금전적 지원에 기대어 증권업을 배우지만, 뚜렷한 직업이 없으며, 연애도 지지부진, 살 집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 닉에게 개츠비는 이루고 싶은 꿈이며 가고 싶은 길이다. 닉은 개츠비를 의심하지만, 동시에 개츠비를 따른다. 닉의 모호한 태도로 개츠비는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개츠비가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보여준다. 개츠비는 ‘통상적인 규칙을 무시하며 그는 불법 주류를 유통하고 가짜 증권을 판매하여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다. 거짓 위에 세워진 그의 성공신화는 과장되고 허황된 거품을 닮았다. 거품의 시대에 올라타 욕망을 부풀리고 삶을 과장하는 모습은 단지 개츠비만이 아니다.


개츠비의 일편단심, 데이지가 하는 말도 비슷하다. 과장된 수식어와 부푼 말에는 큰 의미가 없다. 데이지라는 거품. 하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데이지가 지닌 외적인 매력과 데이지가 속한 사회문화계급이 진정으로 중요하니까. 개츠비가 사랑하는 대상은 데이지가 아니라 데이지가 속한 세계이다. 데이지가 사는 곳, 데이지가 속한 사회.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데이지와 결합한다면 이룰 수 있다. 데이지로 상징되는 사회집단에 편입되는 것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모른다. 데이지가 속한 세계만 알 뿐이다. 자신의 성공에 과몰입하여 데이지를 보고 싶은대로만 보았다. 데이지에게 개츠비를 기다릴만한 인내가 없었고 개츠비가 없는 사이 데이지는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톰은 사치스럽게 낭비하며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톰으로부터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개츠비는 저택에서 파티를 연다.


수많은 사람이 파티에 오지만, 정작 개츠비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가 진짜 누구인지라는 물음은 하나의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음식과 술이 즐비하게 차려진 관대한 파티의 주인으로서의 개츠비만으로 충분하므로. 닉은 톰과 데이지의 천박함을 비난하지만 천박함에 이끌린다.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는, 서로에게 책임이 없으며 깊이 연루되지 않는, 피상적이고 얄팍한 관계가 반복된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뒤처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도망가는 톰 과 데이지를 비롯해 파티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닉과 개츠비의 아버지만이 개츠비의 마지막을 지킨다


화려한 파티와 쓸쓸한 장례식의 낙차가 개츠비의 추락을 보여준다.『위대한 개츠비』를 '위대한'소설,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이라는 꼽힌다는 사실은 개츠비에 투영된 아메리카 드림이 여전히 현실 가능한 소망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미국의 부흥기에 탄생한 인물, 위대한 개츠비. 다시 위대해지고 싶은 미국은 그 시대의 향수를 간직한 인물을 여전히 사랑한다.




+

스콧 피츠제럴드는  '황금모자를 쓴 개츠비' '위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라는 제목을 마음에 두었다고 한다. 편집자가 제시한 '위대한 개츠비'를 막판까지 꺼렸다고 하는데....

제목 <위대한 개츠비>는 신의 한수였다.

작가의 이전글 방황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