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독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20년 12월 23일 새벽 5시, 아파트의 인터넷이 끊겼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가 사용하는 특정 통신사(G사)의 인터넷이 우리 건물에서 끊겼다. 페이스북에 있는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다들 인터넷 되는지, 나만 문제인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아침 7시, 잠에서 깨고 나니, 핸드폰에는 새벽 5시부터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다는 알람이 와있다. 침실 불을 끄기 위해 부른 알렉사는 연결을 확인하라고만 얘기한다. 금방 인터넷이 연결될까?
인터넷이 안된다면, 가장 먼저, 재택근무 중인 남편이 출근을 해야 한다. 이 코로나 시국에,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위험하게시리 출근해야 한다는 남편을 생각하니 괜히 속상하다. 다행히 남편은 사무실에 출근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은 한다. 재택근무가 벌써 9개월째. 남편이 점심을 어떻게 했더라. 도시락을 준비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점심시간 전에 인터넷이 돌아올 수 있으니 점심은 집에 와서 먹는 걸로!(회사가 걸어 5분이다.)
남편이 출근했다. 오랜만에 집에 혼자다. 코로나로 lock down 된 이곳에서 난 뭘 하면 좋을까.
한국에 있었을 때 인터넷이 끊겼던 적이 있던가 생각해본다. 원룸이며 학교며 인터넷이 공짜였다. 아니, 알뜰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월 3만 원에 무제한 인터넷을 사용했다. 집에서조차 인터넷 따위 연결하고 살지 않았다. 근데 갑자기 인터넷이 없는 저 옛날 세상에 던져진 느낌이다.
사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다. 미국에서의 내 핸드폰 월 데이터 용량은 1GB. 항상 인터넷 연결해 놓고 살던 내게 1GB는 쓰지 않고 이월되던 용량인데, 인터넷이 끊겼다 하니 매우 적게 느껴지는 양이다.
넷플릭스도 볼 수 없다. 유튜브가 웬 말이고, 웹툰은 무리다. 가끔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인터넷 현황에 대한 글이 올라오는지 확인하는 것뿐 다른 건 사치다.
넷플릭스의 테라스하우스에 빠져있었다. 남편이 티비를 많이 보는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난 항상 "중간에 끊을 수 있어. 다른 중요한 게 있으면 중단할 수도 있어. 그러므로, 난 중독 아니야"라고 답했었다. 언제나, 난 괜찮다고 내가 관리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인터넷이 끊기고 나니 알았다. 난 중독이었다. 인터넷 중독.
한국이 매우 그리워졌다. 인터넷이 끊겨도 금방 고쳐졌을 것 만 같은. 저렴한 가격에 무제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핸드폰에, 아니 인터넷이 끊기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한국이 매우 그리워졌다. 내가 왜 이 먼 곳에 와서 고생이지...?(사실, 고생한 건 없다.)
쌓였던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한번 돌려본다. 둘만 사는 집의 설거지가 얼마나 많겠는가. 게다가 식기세척기도 사용하니 금방 끝나버린다. 항상 미루던 청소기질도 집이 작은 덕분에, 역시나 일찍 끝나버린다. 30분 걸렸나, 하기 싫어 미루던 청소도 그렇게 끝이 났다.
책을 읽어본다. 영상물로 인해 미뤄뒀던 킨들을 들고 암체어에 기대앉는다. 읽다가, 졸다가, 알렉사도 한번 불러보고(연결되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다시 읽다가, 졸다가, 페이스북에도 들어가 본다. 오랜만에 기나긴 독서를 했다. 부모님에 의해 강제적으로 책을 읽은 느낌, 강제 디지털 디톡스랄까... 그래도 독서를 오래 했다는 것에 뿌듯함은 있다.
사실, 할 일이이야 많다. 항상 토플 성적이 필요해를 반복해서 말하는 나를 위해 영어공부를 했어도 되고, 오래간만에 출근했던 남편과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 요리를 열심히 했어도 됐는데. 인터넷 끊기 충격인지, 디지털 디톡스 때문인지 그런 의욕 따위 없이 그나마 독서로 하루를 충실히 보냈다.
결국, 우리 집 인터넷은 새벽 5시에 끊겨 오후 4시에 정상화됐다. 알렉사가 내 부름에 흔쾌히 대답했다. 남편은 집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난 정말 시험기간이 갓 끝난 대학생처럼 행복해했다. 인터넷 그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간절하게 하는지. 무튼, 이번 기회로 인터넷 중독을 실감해버렸다. 반성하고 또 반성. 조금 더 생산적으로 살아보겠다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