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전 세계가 아프다. 중국에서 코로나가 시작됐다고 아시아인들이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언제든 어디서든 시작될 수 있는 바이러스에 이름표를 붙여 괜히 약자들을 괴롭힌다.
내가 사는 동네는 안전한 지역이라 할 수 없다. 놀기 좋은 동네 일 뿐. 작년 5월에 잠시 남편 보러 왔을 때였다. 혼자 장을 보고 집 앞 QFC(마트)를 나오는 데 앞에서 한 남성이 바지 한쪽을 걷어 올리고 페트병으로 자기 머리를 치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무서웠다. 단지 아픈 사람일 수 있지만 혼자 있던 나는 무서웠다. 그 길로 빠르게 집을 향했다. 가는 길, 식당 앞에서 한 남자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겪은 적 없던 일들을 연달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캐피톨힐에 살고 싶지 않았다.
Stay at home order가 내려지고 뉴스에서 인종차별 사건들이 보도됐다. 세상 쫄보인 나는 될 수 있으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5평 원룸이 답답한 남편이 산책을 가자고 해도 거절. 집이 좋다고 하며 안에만 있으려 했다. 그럼에도 마트에 가야만 했다. 우리가 주로 가는 곳은 5분 거리 아마존 고 다. 아마존 고 그로서리는 캐셔가 없다. 핸드폰을 인증해야 마트에 들어갈 수 있으며 물건을 집고 나가는 순간 자동 계산이 된다. 세상 편하다. 현금도 사용하지 않으니 노숙자도 없고 핸드폰이 있어야 입장 가능해서 마트 안도 안전한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마존 고 그로서리
물건을 집어 나가면 자동 계산된다.
그 날은 무국이 먹고 싶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무국이 계속 먹고 싶었다. 아마존 고는 무나 국거리용 소고기를 팔지 않는다. 오랜만에 QFC에 가자고 했다. QFC는 아마존 고에서 2블록 떨어져 있지만 홈리스들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진다. (홈리스들은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단지 내가 무서워할 뿐이다.) 별일 있겠어란 맘에 도착한 QFC. 정문 앞에 여러 흑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재료를 사서 나왔고 아마존 고에 들리기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QFC 앞에서 노래 부르던 목소리가 우리 뒤에서 길을 건넌다. 아마존 고로 향하는 데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가 계속 따라온다. 불안했다. '설마 계속 따라오나? 아마존 고는 핸드폰 인증이 필요하니 따라오지 못하겠지.' 우리는 아마존 고에 도착했고 바나나를 골랐다. 따라오던 흑인은 노래를 부르며 아마존 고에 들어와 휴대폰 인증 기계를 사뿐히 점프했다. 무서웠다. 그 흑인은 결국 우리 옆에 서서 계속 노래를 불렀다. 발라드인지 찬송가인지 가창력을 뽑내 듯. 점원은 흑인 옆에 서서 "Sir Sir"만 반복했다. 쫓아낼 수는 없는 건가. 나와 남편은 흑인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무시가 최선인 것처럼. 다른 채소를 고르러 자리를 피했을 때 그 흑인은 다른 아시안계 남자 옆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러다 아마존 고를 떠났다.
큰 맘먹고 QFC에 간 건데 결국 이런 일을 겪었다. 기분이 더럽고 무서운 그런 일. 기사에 나오는 인종차별에 비하면 이 정도야 우습다. 사실 코로나 전에도 이런 일들은 있었다. 밴쿠버에 살 때 남편과 길을 걷는 데 마주 보며 걸어오던 남자가 "왁! "하며 깜짝 놀라게 하는 일. 캐피톨힐 대낮에 친구와 둘이 걷는 데 마주 보던 두 사람이 우리를 놀라게 하던 일. 이런 일과 다를 건 없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을 결국에 겪을 수밖에 없는 건지 아니면 동네가 문제인 건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더욱 악화될수록,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인종차별들은 더 심해질 것만 같은데 모쪼록 타지 생활하는 사람들이 상처입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