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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노루 Oct 11. 2018

밤의 여왕은 정말 '나쁜 X' 일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1777년의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


1791년 9월 말, 빈의 비덴(wieden)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가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술피리>는 비록 모차르트가 가장 마지막으로 작곡한 오페라는 아니었을지라도, 가장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통해, 모차르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더욱이,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모국어인, 독일어 오페라, 징슈필(singspiel)이니 말입니다. 


<마술피리>의 독일어 대본은 모차르트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쉬카네더가 쓴 것입니다. 그는 1789년부터 빈의 일반 시민들을 위한 비덴 극장을 임대받아 운영해 온 극단의 단장이자 배우였습니다. 이처럼 <마술피리>의 대본은 전문적인 극작가에 의해 쓰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마술피리>의 문학적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대본 곳곳에 숨겨져 있는 쉬카네더의 흥행사적 감각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빈의 시민들이 뭘 좋아할지 정확히 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쉬카네더는 당시 빈에서 인기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마술피리>의 대본을 썼고, 모차르트에게 음악을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1791년 초부터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1791년 9월 30일 초연 안내문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서곡을 포함하여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그리고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가 있습니다. <마술피리>는 크게 두 가지의 주요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하나는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 그리고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사랑'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밤의 여왕과 빛의 신전을 담당하는 자라스트로의 ‘대립’입니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도 누구나 자라스트로가 밤의 여왕에 승리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밤의 여왕이 나쁜 역할이고, 자르스트로가 착한 역할인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편견을 갖는 이유는 너무도 단순합니다. 밤의 여왕은 ‘어둠’이고 자라스트로는 ‘밝음’이니까 말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둠'은 악한 것이고, '밝음'은 선한 것이라고 배워왔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밤의 여왕은 정말 나쁜 사람일까요?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밤의 여왕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어여쁜 딸, 파미나 공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라스트로가 바로 그 파미나를 자신의 신전으로 납치해 갔습니다. 딸을 잃은 밤의 여왕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에 싸여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타미노 왕자는 공주를 구하러 떠납니다. 한편, 밤의 여왕은 자신의 딸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는 타미노 왕자에게 새 잡이 사냥꾼 파파게노와 함께  그들에게 길을 안내해 줄 '세 소년'을 동행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타미노에게는 ‘마술피리’를, 그리고 파파게노에게는 마법의 ‘은빛 종’을 줍니다. 이처럼 극의 전반부까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밤의 여왕은 그저 딸을 잃은 '불쌍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착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자라스트로가 남의 딸을 납치해 간 ‘나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라스토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어이없게 밝혀집니다. 타미노 왕자가 파미나 공주를 찾던 중, 우연히 자라스트로 신전의 대표 승려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타미노 왕자에게 자라스트로가 ‘악인’이 아니라, 덕망 높은 ‘현자’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타미노는 그의 말에 별 의심 없이 수긍하는 듯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자라스트로 신전의 대표 승려에게는 당연히!!! 자라스트로가 '착한 사람'이 아닐까요? 


<마술피리>는 2막에 접어들면서, 이야기가 급 반전됩니다. 그러니까, 제1막이 타미노 일행이 납치당한 공주 파미나를 구하러 가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제2막은 자라스트로의 아래에서 남녀의 ‘완전한 결합’을 위한 3가지 시험이 이야기의 주를 이룹니다. 제2막에서 타미노 왕자는 밤의 여왕의 '복수'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니, 자라스트로가 착한 사람이니까 굳이 복수할 필요도 없이, 오직 파미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한 목적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타미노는 침묵의 시험을 홀로 이겨내고, 그리고 파미나와 함께 불과 물의 시련을 받게 됩니다. 불과 물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건 바로, 마술피리 덕분이었습니다. 3가지의 시련을 잘 견뎌낸, 파미나와 타미노는 자라스트로의 신전에서 부부로 완전한 결합을 이룹니다. 한편, 첫 번째 침묵의 시련조차 이겨내지 못한 파파게노는 마술의 '은빛 종'을 흔들자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반려자 파파게나를 만나 부부로 결합됩니다. 이렇게 타미노와 파미나, 그리고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는 자라스트로 아래에서, 완전한 사랑을 이룹니다. 한편 밤의 여왕은 직접 복수하기 위해, 자라스트로의 흑인 노예였던 모노스타토스와 자신의 세 시녀와 함께, 자라스트로 성에 몰래 숨어 들어오게 되지만, 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자라스트로의 빛에 의해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 '빛'이 '어둠'을 물리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마술피리>는 '빛'인 자라스트로가 '어둠'인 밤의 여왕을 물리치며, 그리고, '선'(善)의 자라스트로 아래에서, 두 커플인 타미노와 파미나, 그리고 파파게노와 파파게나가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으로 마칩니다. 그런데, <마술피리>의 ‘해피엔딩’이 정말 통쾌한 가요? 밤의 여왕은 정말 멸망해 마땅한 “나쁜 사람”인 것일까요? 밤의 여왕은 타미노 원정대에 마술피리와 마법의 종, 그리고 세 소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밤의 여왕이 그들에게 준 것들은 절대적인 순간에 굉장히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우선, 마술피리는 타미노와 파미나가 완전한 결합을 이루기 위한 불과 물의 시련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었고, 마법의 종은 첫 번째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한 파파게노에게 파파게나를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 소년은 절망에 빠진 파미나와 파파게노에게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밤의 여왕이 타미노 원정대에게 준 선물들은 아주 쓸모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는 어쩌다가 이토록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을까요?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 사이의 갈등은 밤의 여왕의 남편이 죽으면서 일어나게 됩니다. 밤의 여왕의 남편은 자신이 다스렸던 “광대한 태양계”를 아내인 밤의 여왕이 아니라, ‘남성’인 자라스트로에게 양도하게 됩니다. 

 

... 이 태양계는 남성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오. [...] 당신의 의무는 당신과 당신 딸을 현명한 남자들의 지도에 맡기는 것이오.


그리고 밤의 여왕은 이에  동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밤의 여왕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태양계를 뺏긴, 어쩌면 자신의 온전한 권한을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라스트로는 정말 착한 사람일까요? 빛의 신전을 관장하는 현자인, 자라스트로의 취미는 사냥이며, 6마리의 사자가 끄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노예들까지 거느립니다. 그리고 흑인 노예인 모노스타토스에게 체벌을 가하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걱정하는 파미나에게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복수하는지 보아야 하오”라고 말했다가, 곧이어 자신의 신전에서는 “복수를 알지 못하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는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 <마술피리> 속 자라스트로는 빈의 프리메이슨 비밀결사대의 지도자인, 이그나츠 폰 보른(von Born, 1742~1791)과 연결 짓기도 합니다. <마술피리>의 작곡가와 대본가인, 모차르트와 쉬카네더는 당시 빈의 프리메이슨의 단원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마술피리>는 프리메이슨과 관련짓는 ‘프리메이슨 오페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오페라에는 프리메이슨의 상징들이 암호처럼 곳곳에 사용되었습니다. 


프리메이슨 심볼 중 하나 (출처: 위키백과)


그런데, 만약 이 오페라가 '프리메이슨 오페라'라면 더욱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만약 자라스트로가 프리메이슨의 지도자 보른을 비유한 것이라면, 자라스트로의 모호한 성품이 좀 걸리지 않을까요? 그는 형제애, 인류애, 평등주의를 주창하는 프리메이슨의 기본 사상에 어긋나는 세속적인 모습들을 보입니다. 더욱이 자라스트로와 승려들 간의 대화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여성 비하 내용들은 아무리 프리메이슨 단체가 남성들만의 모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프리메이슨의 사상에 위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문제로 돌아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속,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 중,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일까요?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규정하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우리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분류한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도 '착한' 사람일까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절대선’과 ‘절대 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요? 아니면, 타미노와 파미나처럼, 그리고 파파게노처럼, ‘선’과 ‘악’을 가르는 것보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식 낳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모차르트는 이 말년의 오페라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Wir wollen uns der Liebe freun, Wir leben durch die Lieb' allein. (우리는 사랑을 기뻐하고, 사랑으로 한평생 살리라.)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 "무서워 마오, 사랑하는 아들아!"(O zittre nicht, mein lieber Sohn!)
https://www.youtube.com/watch?v=IkA65PLEdac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 
https://www.youtube.com/watch?v=87UE2GC5d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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