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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노루 Dec 13. 2018

베토벤이 우리에게 건넨 메시지

<교향곡 제9번> “합창”

KBS  교향악단 공연 포스터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 되면, 여러 공연장과 많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스피커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 흘러나옵니다. 실제로 철학을 강의하는 한 강사는 공개 강의 중에 12월 31일에 이 곡을 매년 빼놓지 않고 듣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은 송년 레퍼토리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리도 연말에, 특히나 제야에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이 자주 연주되고 들려지는 것일까요?




<교향곡 제9번> “합창”은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작곡된 교향곡입니다. 이 작품은 베토벤이 20대 때부터 계획하여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한, 약 30여 년에 걸쳐 작곡된, 그의 최대의 역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토벤은 1785년에 발표된 실러의 시집 “자유의 송가”를 읽게 되고, 1798년 처음으로 가사와 선율을 스케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1824년이 되어서야, 이 작품은 최종적으로 완성되어 초연되었습니다. 이처럼 베토벤이 오랫동안 공들인 작품이어서 인지, <교향곡 제9번>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클래식 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베토벤의 ‘정신적 승리’이자 ‘인류에게 헌정된 환희의 대서사시’라고 일반적으로 일컬어집니다. 그러니까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인류를 향한 마지막 메시지를, 보편적 형제애와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요? 베토벤이 가사로 선택한 실러의 시가 그러한 내용이라서요? 베토벤은 시인이 아니라 작곡가인데요?!


영화 <카핑 베토벤> 중, 한 장면


음악적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은 굉장히 독특한 작품입니다. 교향곡에 성악이 들어가 있으니 말입니다. 교향곡은 18세기 고전주의 시대에 인기 있었던 대표적인 ‘기악’ 음악의 한 장르로, 성악의 형태를 갖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교향곡은 현악기와 관악기, 그리고 타악기가 모여 있는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됩니다. 이처럼 기악 음악인, 교향곡은 ‘성악’ 음악의 대표적인 장르인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에 대비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이러한 기악음악의 대표자격인 교향곡에, 그것도 가장 클라이맥스에 달하는 마지막 4악장에, 네 사람의 독창자와 혼성 합창단을, 그러니까 성악을 삽입한 것입니다. 아마도 교향곡을 기대하고 있던 이 곡을 처음 듣는 청중이라면, 4악장에 성악이 사용된 것을 듣고는,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게 교향곡이 맞단 말인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향곡 제9번>은 마지막 악장에 “독창”과 “합창”을 집어넣음으로써 기악 음악과 성악 음악의 견고한 경계를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베토벤이 우리의 관습을, 그러니까 음악에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무참히 깨뜨려 버린 것이지요.


이외에도 <교향곡 제9번>을 듣다 보면, 이 곡의 중간 부분(아래 영상의 10분 14초부터)에 심벌즈와 트라이앵글이 인상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나옵니다. 이 부분은 바로 “터키 행진곡”입니다. 그런데, ‘터키’라는 나라를 잠시 생각해 보세요. 터키의 국교가 무엇일까요? 터키는 오늘날에도 비록 헌법상 국교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 국민의 99%가, 그러니까 거의 전부 이슬람교도로서, 가히 이슬람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터키에서 이슬람의 교리와 전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베토벤이 살고 활동했던 오스트리아의 빈은 어떤 종교를 주로 믿었을까요? 유럽 여행을 다니다 보면, 교회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오스트리아 빈 역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베토벤 역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터키의 이슬람교와 유럽의 기독교...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두 종교 간의 분쟁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터키는 유럽과 적대적인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이 자신의 <교향곡 제9번>에 터키 행진곡을 중반부에 삽입한 것입니다. 아, 물론, 당시 빈에서는 터키 행진곡이 꽤나 인기 있었다고는 하나, 베토벤이 <교향곡 제9번>의 중간 부분에 터키 행진곡을 썼다는 것은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분명히 기독교 교리인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말이죠. 이러한 작품에서, 이슬람 군대 행진곡이라고 할 수 있는 터키 행진곡을 사용했으니 말입니다.


졍명훈이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의 4악장



그러니까, 베토벤은 기악음악 장르에 성악을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을 노래하는 가사에 터키 행진곡을 삽입함으로써, <교향곡 제9번>에서 우리의 편견과 관습을 허물고, 적대 국가인 터키까지 사랑의 대상으로 포용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Alle Menschen werden Brüder)


백만인이여, 서로 포옹하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12월의 가장 큰 이벤트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성탄절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생일 축하 파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에게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를 실천했습니다. (흠... 반성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자신을 믿는 기독교인들만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적하는 모든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브론치노(A. Bronzino)의 그림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복음 5:45)





우리는 나와 생각과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허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적대적인 마음을 가지며 너무도 쉽게 싫어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더욱 그러한 거 같습니다. 여성과 남성, 청년과 노인, 부자와 빈자, 갑과 을, 아싸와 인싸... 서로를 가른 벽은 점차 높고 견고 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토벤과 예수님과 같이, 벽을 허물고, 내 친구만 사랑하는 연말이 아닌, 원수라고 생각되는 적에게까지도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랑이 가득한 연말과 2019년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앗, 저부터 말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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