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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Mar 02. 2021

어린 새댁은 그렇게 가장이 되었다

 619-13번지 3화. 장골댁



<그땐 그랬지>    


 @류병석 지음

     



지은이 및 619-13번지 그 가족에 대한 간략한 소개


52년생이지만 그 시대에 놀랄 일도 아니듯 53년도에 출생신고를 했다. 

그래서 법적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르다.

무심한 딸은 여전히 아빠가 뱀띠인지 용띠인지 헷갈린다. 

4남 4녀 중 차남. 8남매 중에서는 셋째. 

그런데도 아버지는 실제적인 장남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엄마는 억울하게도 맏며느리 노릇을 했고 지금도 한다. 

게다가 형제 중 막내였던 할아버지가 큰집으로 양자를 가고, 큰아버지에게 아들이 없는 바람에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는 더 억울하게도 종손이자 장손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나라는 자유로운 영혼은 서른여덟이 되도록 철이 들지 않은 딸이다.

부모님은 나를 두고 어디서 이런 별종이 태어났나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가 조금 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버지가 ‘가난’이라는 삶을 살아내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나보다 더한 한량이자 별종이 되었을 거라고.

그러니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아버지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다.

어이없고 우습게도 나와 평행선을 달리는 아버지의 성격을 나는 닮았다.

지금부터 쓰여지는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역사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가 써내려 간 이 자전적 소설로 확인하기를... 




때는 1800년대 말쯤으로 올라간다.


(나 : 1952년 생인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이 1800년대부터 시작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건 웬만한 대하 소설의 시작이니, 도대체 나의 아버지가 어떻게 끝을 맺을지 모르겠다.)     


한 여성이 장골에서 죽골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병약하여 집안일에 큰 도움이 못 됐다. 시숙이 있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주정뱅이에다 건달이었다. 무위도식하고 떼쓰고 성질은 난폭하고. 남들이 피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집안에도 도움되지 않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 시절에도 살아가는 것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집안이 그러면 누군가는 가장 노릇을 해야 하기 마련. 


장골에서 시집와 ‘장골댁’이라 불리던 새댁은 어린 나이에 가난한 살림을 꾸려야 하는 가장 아닌 가장이 되었다. 병약한 남편과 집은 돌보지 않고 밖으로 사고만 치는 시숙. 장골댁은 강하고 억척스럽지 않으면 생활과 가정을 꾸려 갈 수 없었다. 낮에는 남의 집 허드렛일하며 먹을 것을 구해 생활했고, 밤에는 베틀에 앉아 밤새 베를 짰다. 당장 먹고사는 일뿐 아니라 장골댁은 미래를 생각했다.


(나 : 여기서 장골댁은 아버지의 증조 할머니이며, 나의 고조할머니이다. 이 나이가 되어 고조 할머니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궂은일, 힘든 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며 새댁은 장부 기질로 변해갔다. 열심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일하니 조금씩 조금씩 살림이 펴졌다. 총각만 둘이 살던 집안에 시집와 여자 몸으로 가장이 되어 가정을 꾸려가는 게 대단하지 아니한가. 장골댁은 집안도 단출하고 시부모도 계시지 않은 곳에 홀로 시집와 적은 살림을 그렇게 꾸려나갔다. 하지만 세월은 좋은 세상으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생활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때는 일제 강점기였으니까.     




일본 놈은 점점 더 조선 사람들을 옥죄고 극악무도하게 괴롭히고 잔인하게 약탈했다. 점점 더 그 강도가 높아졌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소나무 송진을 비행기 기름으로 쓰기 위해 말살하고 곡식알을 세면서 호당으로 공출해갔다. 피를 말릴 정도로 조선 사람들을 괴롭혔다.  


(나 : 등산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가끔 산을 타실 때, 소나무에 있는 흉터를 보면서 일제 강점기 시대에 그들이 저저지른 반인륜적이 행위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이야기들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장골 새댁은 임신해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귀한 생명이 탄생했다. 그러나 부전자전이라 했든가. 아들도 튼튼하지 못해 항상 병치레에 남편처럼 힘없이 그냥 목숨줄을 연명만 했다. 식구가 하나 늘었으니 장골 새댁은 더욱더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원체 가진 게 없는 집안에서 생활은 항상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게다가 일제 만행은 그칠 줄 모르고 점점 더 극악무도해졌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시숙은 집에도 안 오고 나가서 몹쓸 짓만 하다 맞아 죽었는지 술 먹고 얼어 죽었는지 밖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골 새댁은 그 와중에 정중히 장사를 지내고 남의 산이지만 산 주인의 허락을 받아 시숙의 묘도 써줬다. 짧은 생을 산 시숙이 편안하고 남으로부터 손가락질받지 않는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일본 놈의 괴롭힘이 없는 저승으로 잘 모셔드렸다.      


고이 잠드소서. 즐겁게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남들한테 멸시와 증오, 손가락질 받으며 떠돌이 생활만 하다가 이승을 마감한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 시대를 잘못 타고난 한 인간이 쓸쓸히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이제 장골댁에게 남은 사람은 남편과 아들뿐이었다. 


그렇게 장골댁은 집안의 역사를 다시 새롭게 써내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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