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놓치지 않을거에요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p132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보리출판사
집을 줄여 이사하게 되었으니 짐 또한 줄어들어야 마땅했다. 나는 그 여름 내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가지들과 당장은 사용할 일 없는 살림들을 분류해서 이삿짐 상자에, 옷 보관함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물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상당히 까다로운 심사였다.
견출지를 붙여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상세히 적고, 흰 박스와 검은 박스의 용도를 구별해서 직관적으로도 한 눈에 내용물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스물 몇 평에서 시작한 살림이 언제 이렇게 늘어났는지. 다세대 건물 옥탑 하나를 커다란 박스들로 가득 채웠다. 철이 바뀌도록 한 번 꺼내보지 않은 옷들은 과감하게, 모두 정리하고 냄비도 사용하는 것들로만, 후라이팬도 두 개만 남기고 다 넣었다. 한 번도 쓴 적 없는 곰솥과는 세상 쿨하게 이별했다.
절반 이상은 외동인 아이의 작아진 옷들과 장난감이다. 물려줄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출 수 있게 연령별로, 계절별로 나누어 보관한다. 위생이 중요한 아기용품들은 깨끗이 소독해 비닐을 씌웠고 몇 번 신지 못해 새 것 같은 신발들도 모두 세탁해 두었다. 아이도 짐 정리에 동참. 이제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결단력 있게, ‘동생들 물려줄 것’ 으로 분류해서 내 놓았다.
그렇게 심사는 대부분 당장의 쓸모를 기준으로 이루어졌지만 간혹 예외는 있었다. 남자아이인 조카가 태어나거나, 우리가 손주를 보지 않는 이상 열어볼 일이 없을 아기 옷 상자는 차마 창고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이사를 왔다. 그리곤 좁은 집의 옷장 한 귀퉁이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내 아이가 태어나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들과 싸개들. 아. 홍수가 난다면 나는 이 박스를 머리에 이고 헤엄을 칠지도 모른다. 여기서 집이 더 좁아진다 한들, 이 상자에서 차마 한 조각도 버리지 못할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 아직 조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