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봄에도 꽃이 피었다.
'나의 코로나_월'이라는 주제로 진행 중인 민음사 월간지 <Littor>, 독자 수기 공모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몹쓸 바이러스가 퍼진 지도 어느덧 석 달이 되어간다. 강제로 갇힌 신세가 되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나처럼 타고난 실내인간도 서서히 지치고 예민해져 가는 것을 느끼니 말이다.
요즘 나는 여태 먹고 찐 살을 덜어내기 위해 매일 야심한 밤에 집을 나와 걷는다. 700미터즈음 되는 공원 둘레길을 대여섯 바퀴, 한 시간쯤 걷고 돌아올 때면 길에는 사람 하나 없다. 새우잡이 배에 실려가도 일을 못해 살아남을 자신이 없으니. 한껏 소심해진 아줌마는 가로등이 있는 환한 대로를 골라 먼 길을 돌아간다.
땀 흘려 걷는 일은 비만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꽤 도움이 된다. 처음 한 바퀴를 돌기 시작할 때는, 막 휘저은 음료처럼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 가득 떠올라 뿌옇게 부유한다.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다 보면 생각은 차례차례 정리되고 부유하던 감정들도 차분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결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도 선명해진다.
오늘은 날이 따뜻해서인지 땀을 꽤 많이 흘렸다. 후드가 달려 있는 등 부분이 축축하게 느껴진다. 오랜 실내 생활로 쌓인 무력함과 우울감도 땀방울에 씻겨간 듯, 상쾌해진 기분이다. 여섯 바퀴째가 되자 두 다리는 무거워 오고 허리도 뻐근하다. 얼마만인지 모를, 유산소 활동이 주는 이 묵직한 피로감이 반갑기까지 하다.
4월. 봄이 오고 있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런 새벽에는 패딩을 입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길고 지리했던 겨울을 비로소 떠나보낸 것이다. 따뜻한 봄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곧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되겠지만 말이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숨 막히는 마스크까지 함께다.
늘 이런 식이다. 일 년 365일 중 좋은 날이 참으로 귀하다. 추운 겨울, 반짝 봄, 그리고 다시 이글대는 더위. 나는 문득 연중 봄 같고 가을 같은 기후의 도시들이 부러워지려 한다. 그런 곳에서의 삶이라면 잔뜩 성이 나 있는 사람들도 온화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찬바람을 막을 필요가 없는 발코니에는 두꺼운 샷시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집 안에서도, 가볍게 덧댄 창문을 열고 실컷 상쾌한 바람을 쏘일 수 있다면 감금된 듯한 이 기분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천국 같은 그 곳에서는, 뜨거운 열기 속에 땀 흘리며 들이키는 차디찬 얼음물의 쾌감이라든지, 추운 겨울 야외에서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김이 나는 핫초코의 절묘한 맛은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져 보니 아무래도, 사계절의 묘미와 지중해성 기후를 맞바꿀 수는 없겠다는 결론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더운 여름에야 진정한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매서운 겨울이 와야 제대로 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난 뒤에야 행복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이제야 나는 깨닫고 있다. 마음껏 숨을 쉬고, 사람들을 만나고, 아침이면 가방을 멘 아이들이 삼삼 오오 학교로 모여드는 그 풍경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는지를.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걷히고 나면, 이 힘든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오직 그것만으로도 이제 우리는 이전보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빼앗긴 봄에도 벚꽃이 피었다. 관리사무소 앞 커다란 벚나무에 벚꽃이 흐드러져 있다.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꽃송이의 무리는 잘 튀겨진 뻥튀기 자루 같기도, 찰랑이는 은빛 머릿결 같기도, 꼬리가 긴 은하수 같기도 하다.
"아름다워.." 땀에 젖은 서른 네 살의 아주머니는 벚나무 앞에 한참을 서서, 올해도 어김없이 양껏 피어난 꽃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