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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15. 2019

엄마,  아빠를 지켜주지 그랬어

그제 저녁에 막내가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었다.

요즘은 도통 아빠를 찾는 일이 없어서 이렇게 우리가, 아빠가 없는 삶에 적응해가는구나 생각을 했더랬다. 우는 동생을  달래면서 전하는 딸들 이야기로는 그 며칠 전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열린 공연을 보면서도 막내가 아빠를 찾았다고 한다. 그날 나는 공연 준비팀이어서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아이들이 어떻게 공연을 관람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던 막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왜 아빠를 지켜주지 않았어, 아빠를 지켜주지 그랬어. 엄마가 커피 마시러 가지 않았으면 됐잖아"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1분도 안되었을 거야

그날 호스피스 병동 오전 회진이 있고 나서 옆 병상 보호자 언니가 뭐라도 먹으라며 사과파이를 주었다. 앞 병상 환자분의 딸이 "언니 우리 커피 물 받으러 가자"라고 했다.

잠이 들었다고 느껴져도 내가 없으면 바로 눈을 뜨고 나를 찾는 남편이기에 남편이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사과파이를  한입 물고 손에 컵을 쥐고 병실 복도로 나가 따뜻한 물을 받아 병실로 들어왔다.

정말 짧은 시간.

복도에 나갔다 따뜻한 물 한 컵을 담았던 그 짧은 시간.

고통에 일그러졌다가 진통제를 맞고 평온히 잔다고 느꼈던, 그래서 잠시  병실 옆을 비웠던 그 순간, 내가  남편 옆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있었다. 임종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 아니 오늘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던 순간. 그의 입술은 보랏빛으로 '나는 이제 가네'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고 병실이 떠나가라  울었다. 의료진들이 남편에게 달려오고 다른 방으로 옮겨질 때까지 나는 덜덜 떨며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왜 커피물을 받으러 갔을까, 내가 옆에서 손을 잡고 있었어야 했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는 않았을까, 이게 다 나 때문이야, 온갖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다.

투병 기간 내내 언제나 그의 옆에 있었으면서 놓쳤던 단 한순간, 그의 임종. 나는 아직도 남편의 보랏빛 입술이 떠오를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쳐 버려서 느끼는 말할 수 없이 극심한 죄책감이 있다.


막내의 마음에, 그날의 엄마는 아빠를 지켜주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한 번도 막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빠를 지켜주지 그랬냐고, 커피를 마시지 말지 그랬냐고 말하는 막내의 목소리에는  어떤 원망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날마다 최선을 다해 아빠 병간호를 했노라는 말도, 엄마는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말도,  그 어떤 말들도 변명 같아서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엄마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노라고, 아빠가 엄마에게 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게 최선이었다. 나 스스로 궁색하게 여겨져서 한없이 울고 싶었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울다가 울음을 그치고 여느 때처럼 방으로 들어가 레고 블록을 쌓고 놀았다. 나는 아픈 마음을 아이들에게 들키기 싫어서 빨래를 개고 책을 읽고 잠을 잤다.


나의 가장 아픈 곳.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의 죄책감에 더하여 막내의 말을 떠올리게 되리라. 그를 지켜줄 수는 없었어도 그의 마지막을 볼 수는 있었을 거라고. 그가 숨을 멈출 때 그의 손을 잡고 있었어야 했다고. 그 1분. 잃어버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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