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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20. 2019

춥고 시린 겨울밤에

터미널에서 휠체어에 앉아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손에 끼고, 두유를 들고 있는 남편과 휠체어를 멈추며 남편이 터미널 안에서 편하게 자리 잡도록 애쓰는 아내를 보았다. 나는  강의를 하러 시흥에 갔다가 직행 버스를 타고 남부터미널에 와서 집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터미널 안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내가 있는 분식집으로 와 김밥 두 줄을 주문하고는 어묵 국물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여보 어묵 국물 먹어볼래"라고 말했다. 어떤 상황인 지를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남편은 아프고, 숨이 차고, 잘 먹지를 못하겠지.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투병할 때의 남편과 내 모습이 겹쳐져서 주책맞게 라면을 먹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핑 돌았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자려고 애를 써봐도 차장 밖 밤의 풍경이 집으로 달려갈수록 자꾸만 눈물이 났다.

서울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는 무주와 안성을 거쳐간다.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병원을 가기 위해 우리는 대전까지 고속버스를 타곤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대전역에서 대전복합터미널로와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무주와 안성에 다다를 때쯤이 되면 남편은 너무 지쳐서 의자를  꽉 붙잡거나 구역질을 했고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어서 빨리 장계에 도착하기를 기도하곤 했다.

버스가 무주를 지나고 안성을 지난다. 계북 등성이를 올라 장계로 가는 길. 시린 겨울이 시작된 밤. 눈이 내려 차가 오르지 못해 눈길을 걸으며 걱정 말라고 괜찮다고 하던, 지난해 이맘때쯤의 남편 모습이, 아까 본 부부의 모습과 겹쳐 계속 떠오르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나는 겨울을 잘 버텨내야 하는데...
결혼기념일이 다가오고 여러 상념이 뒤범벅되고 나는 늦은 밤 터미널에 내려 집으로 갔다.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마치 그를 혼자 두고 가는 것처럼...


지난해 겨울, 항암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날. 눈이 내려 차가 집까지 오르지 못해 걸어가는 길.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씩씩하게 길을 걷던 남편의 뒷모습. 겨울이 시작되어서 그런 것인 지, 그가 걷던 뒷모습 때문이었는지, 계속 이 모습이 떠오른다. 이대로 가버리기라도 한 것 처럼... 뒷모습 말고 나와 나란히 걷는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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