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Dec 05. 2019

오빠 안녕. 하늘에서 행복하기를

오빠가 하늘로 갔다.

오빠는 줄곧 아파왔고, 날마다 병원을 다녔고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오빠가 날마다 병원을 갔으므로 뭔가  심각한 이상이 있으면 우리 가족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갑작스럽게 오빠의 죽음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을 우리 가족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빠가 설사를 하고 아프다고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수요일 저녁에 엄마가 전화를 해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119에 신고해서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한다고 엄마한테 말을 했다. 엄마가 알았다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었고 나도 오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오빠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전화를 했는데 통화 중이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오빠랑 통화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오빠가 잠을 잘 수도 있으니 내일까지 기다려본다고 했다. 그럴 거면 뭐하러 나한테 연락이 안 되냐고 말을 했냐고 내가 화를 내며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오빠한테 전화를 했는데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고 이상한 소리들이 들렸다. 오빠가 전화기를 잃어버렸나 생각을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가 다니는 개척교회 목사님과 권사님이 오빠 집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오빠가 이미 고인이 되어 있다고 했다.


오빠는 대구에 살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대구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려가면서 오빠를 발견한 목사님과 통화를 했다. 119를 불렀고,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왔고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오빠는 집에서 고인으로 발견되어 변사자 처리가 된다고 했다. 내가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조사는 끝난 상황이었다. 담당 경찰은 이런 경우 변사처리가 되므로 검찰 지휘권이 내려와야 시신 인수가 되는 거라며 시신은 내가 내려오면서 정한 장례식장으로 옮겼지만 공식 인수는 아니라고 했다. 내일 검찰 지휘권이 나오면 경찰서에 와서 받아가라고 했다. 의사가 와서 검안을 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오빠가 발견된  정황을 설명해줬고 현장에 있었던 오빠의 지갑, 휴대폰, 아파트 열쇠도 검찰 지휘가 나오면 전해준다고 했다. 위로는 토사가 아래로는 설사가 가득했다고 했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있었던 적은 있지만 비혼자였다. 언니들과 나, 내 동생이 상주가 되었다. 가족들이 급하게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안치실에서 오빠를 보았다. 눈은 뜨고 있었고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코로 복수가 나오고  피부색도 보랏빛으로 많이 변하고 있었다. 혼자서 아프고 외롭게 세상과 이별했구나 언니와 나와 동생  모두 마음이 아프고 너무 아파서 울고 또 울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와중에도 오빠와 연락이 닿지 않은건 두시간 삼십분 정도라는게 위로가 되었다.


오빠는 우리 집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어릴 때의 오빠는 드물게 유치원을 다녔었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세 번째 엄마가 생기고 집안이 복잡해지고  10대의 오빠는 위태롭게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다. 퇴학 대신 자퇴를 하고 자랑스러워했다. 20대 초반의 오빠는 열심히 사회생활을 해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내내 마음도 몸도 아팠다.


갑작스러운 오빠의 죽음에, 각자의 삶이 바빠 오빠를 잘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평생 외롭게 세상에 적응해보려던  오빠의 인생 때문에, 마지막에 아파서 세상과 작별할 때 혼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오빠 장례식의 상주가 된 언니들과 나, 내동생은 울고 또 울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가 오빠의 여자 친구에게 오빠가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경찰에게 휴대폰을 돌려받고 확인해보니 오빠가 받지 못한 그녀의 부재중 전화도 있었다.


검찰 지휘권이 나왔고 검안 확인서를 받아왔다. 장례를 치르고 오빠를 추모관에 모시고 나와 동생이 낯선 대구에 남아 오빠 집을 치우고 유품을 정리하고 가스를 끊고 전기를 끊고 케이블 TV를 끊고 휴대폰을 해지하고  그리고 사망신고를 했다. 오십 년 한 사람의 삶이 바람처럼 날아갔다. 오빠는 천국으로 갔을까 그러기를 소망하며 오빠가 다녔던 개척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다.

오빠의 영정사진과 경찰에게 건네받았던, 오빠의 신분증, 휴대폰, 아파트 열쇠가 담겼던 상자, 오빠가 읽던 낡은 성경책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두 번 상주가 되었다. 남편, 그리고 오빠.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된 것 같다. 나는 어디까지 힘을 내야 할까...  남편에게 하늘에서 오빠 좀 잘 데리고 있어 달라고 마음으로 몇 번씩 부탁을 했다. 그러므로 슬퍼하고 있는 저희도

언젠가는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고인을 만날 희망 속에

현세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하고 또 했다.


나는  몸도 마음도 아프다. 불행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무탈하고 평온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지인들에게 넋두리를 했다. 아이들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고 아프다. 나아지겠지... 이러다 힘이 나겠지. 날마다 새로운 날들이 주어질 테지.


안녕 오빠. 왜 이렇게 오빠에게 미안한 거 투성이인 지... 하늘에서 행복하기를. 이 크리스마스트리는 하늘로 보내는 내 선물이야! 곧 예쁜 꽃, 오빠가 아끼던 거 정리해서 추모관으로 보러 갈게. 안녕 안녕 안녕 안녕히!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춥고 시린 겨울밤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