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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an 19. 2020

The Drugs Don't Work

통증과 통증 관리 사이

늘 새벽에 깬다. 오랜 시간 남편은 아침 여섯 시, 저녁 여섯 시에  옥시콘틴을 먹었다.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통증 관리가 잘되지 않기도 했고 또 환자들은 거의 새벽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곤 하므로 새벽은 늘 내가 깨어있어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세시나 네시부터 그렇게 깨어있다가 여섯 시가 되면 남편을 깨워 약을 주고  아침밥을 지었다. 요즘도 나는 아침 여섯 시, 저녁 여섯 시가 되면 진통제 먹을 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어쩌다가 The Vseve의 The Drugs Don't Work이라는 노래를 듣 되곤 한다. 암 투병으로 이별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지... 안 들으면 그만일 노래를 굳이 찾아서 듣고 또 듣는다.


남편은 지속성 진통제는 옥시콘틴을 속효성 진통제는 아이알코돈을 먹었었다. 호스피스를 하기 전까지 옥시콘틴은 10에서 시작해 120까지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했다. 가장 오래도록 복용한 용량은 60이었다.  투병 초기, 타세바가 역할을 잘해줄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마약성 진통제를 필요로 할 만큼의 통증이 있지 않았다. 더 이상 타세바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암도 통증도 무서울 정도로 번져갔다.  그때 남편은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통증을 가라앉힐 수가 없는데도 진통제를 먹지 않고 참아보고 싶어 했다. 어떤 분들은 마약성 진통제라 습이 되고 중독이  될까 봐 꺼려하시곤 하던데 남편은 변비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잠을 자는 자신이 모습이 싫다고 했다.

"이건 인간다운 삶이 아니야"

"내가 너무 잠을 많이 자"

"시원하게 화장실을 다녀왔으면"

"감각이 무뎌져서 소변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인간다운 시간을 만들려고 먹는 거야. 여보 안 아파야 해. 아프면서 시간을 보내지는 말자. 통증이 덜 느껴지는 게 더 인간다울 것 같아 " 하고 남편을  설득하고 설득했다.


그러나 내 말이 아니라  너무 아파서 통제가 더 이상 되지 않는 상황이  남편이 진통제 먹게 만들었다.


진통제를 먹고 통증 관리가 되면서부터 남편은 웃음을 되찾았다. 여전히 변비에 시달리고 소변을 볼 때 힘들어하고 낮잠에 취한 시간이 많았지만 통증을 덜 느끼는 시간이 많아지니 농담을 하고 TV를 보고 바둑을 두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러 외출을 했다. 일상의  생활에서 웃는 일이 많아지니 남편은 더 이상 진통제 먹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처방받은 진통제 용량으로 통증 커버가 되는지 안 되는지에 따라 병의 진행 상황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곤 했다.


마약성 진통제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았다. 병이 깊어져 왼쪽 팔을 쓸 수 없고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때에는 옥시콘틴에 타진, 패치까지 붙이고 주사로 모르핀을 맞으면서 아이알코돈을 먹던 시절도 있었다. (남편은 거의 대부분의 마약성 진통제를 다 써봤지만 펜타닐정, 펜토라정 진통제는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옥시콘틴이나 타진은 그런 일이 없었는데 패치 진통제는 잠자는 동안 남편을 섬망으로 끌고 가곤 했다. 그래도 다 무섭지 않고 귀여운 섬망이었다.

"커피를 할인하는데 천원이야 먹으러 가자",

"고추농사가 잘되었어 비가 오기 전에 따야지"

"내가 구해줄게요 이리로 와요,..  "

어떨 땐 "피해"하면서 운전을 했다. 그래서 남편이 잠에서 깨면 물어보곤 했다.

"여보 천원 커피는 맛있었어?"

"고추를 얼마나 땄어?"

"경찰이었어 특수부대였어"

 "뭘 피했어?"

그러면 남편이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사실 나는 섬망보다 과호흡 하는 순간이 올까 봐 그게 늘 무서웠었다. 그래서 항암 효과로 증상이 호전되면 주치의와 상의해 가장 먼저 패치 진통제  용량을 줄이고 떼곤 했다.


그러나 모든 통증이 마약성 진통제로 커버되는 건 아니었다. 미간이 쉴 새 없이 찌푸려지고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아파 아파 소리가 절로 나오던 때에 신경차단술을 받을 수 있는지 협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남편은 단 몇 분도 똑바로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신경차단술을 받을 수가 없었다. 신경차단술이 가능했다면 며칠이라도 덜 아팠을까... 부질없이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겨울 딱 이맘때부터가 극심히 아파오던 시기다.

호스피스를 결정하고 병원에 입원 대기를 신청해두었을 때.

호스피스 병동 생활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을 때, 그러면서도 이대로만 이 상태로만 계속있었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염원하던 때. 하루하루가 너무 귀해 오늘도 남편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던 지난해 이맘때. 하루하루 더 많은 진통제에 의지해야 하던 때.


나의 기억과 생각이 그가 너무 아프던 시절로 들어가고 있어서 요즘은 노래를 듣고 그림책을 읽지 않으면 너무 우울하다. 그래 그래서 이러는 거지...


https://youtu.be/ToQ0n3ito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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