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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an 07. 2020

비 오는 날, 넋두리.

가끔씩 이젠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어깨에 기대어 볼 수도, 볼을 만져볼 수도, 손을 잡아볼 수도 없는, 마음 밖에 남편의 실체가 있지 않다는 것이 서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릴 때에는 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남편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기 전에 드라마 열혈사제를 보며 재미있다고 했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뒤에는 계속 컨디션이 나빠졌고 산책을 하거나 휴게실에 가서  잠시 앉아 있는 것도 나날이 힘들어졌다. 나는 남편 기분이 좋아질까 하는 생각에 컨디션이 좀 나아지면 휴게실에 가서 열혈사제를 보자고 종종 말해주곤 했다. 어느 날은 남편이 텔레비전이 보고 싶다고 해서 휴게실에 갔는데 거기 앉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 위태롭게 느껴졌다. 눈빛에도 초점이 없었다.

 "열혈사제는 나중에 보러 오자, 재미있어서 여기저기 케이블에서 엄청 나올 거야"  그날 이후로 남편은 텔려비전을 보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가끔씩 주렁주렁 진통제를 매달고 남편이 휴게실에 위태롭게 앉았던 그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드라마를 보고 웃고 떠드는 일상. 평범한 그 일상을 해볼 수 없었던 그가 느꼈을 좌절감 같은게 느껴지곤 한다.

연말에 열혈사제 소식들이 자주 들려왔다. 남편이 재미있어하던 드라마인데 하면서 한편 반갑고 한편 쓸쓸해지는 마음...
열혈사제는 시간을 넘어 사람들을 찾아왔는데 나는 그와 함께 드라마를 볼 수가 없다. 

요즘 안예은 노래에 꽂혀서 산다.

세상에 처음 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온다 했죠.
당신이 어디 있든 내가 찾을 수 있게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왔다 했죠.

나와 그를 이어주던 붉은 실은 지금도 땅과 하늘로 이어져 있을까
요즘 수없이 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 중이다.

오늘 새벽에 빗소리에 깨서는 남편이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고 아팠다.
날은 봄과 같은데 마음이 시린 날들.

하늘을 향해 손목을 올리고 아래로 끌어내려보고 싶다. 붉은 실이 당겨져서 그가 내려올 수 있게.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꿈에라도 한번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비가 와서 그냥 넋두리. 넋두리인 줄 알면서 하는 넋두리.

 

https://youtu.be/Alb_tNAuD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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