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12월 9일은 결혼기념일이었다. 12일은 쌍둥이 딸들의 생일이었다. 금요일인 13일에는 막내가 아빠 차를 타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며 이른 아침 일어나서 아빠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에게 다녀와야지, 결혼기념일도, 쌍둥이 딸들 생일도 같이 축하하고보고 싶은 우리 마음도 전해야지.
남편의 추모관은 전주에 있다. 호스피스에 있을 때 남편을 두고 직접 나가볼 수가 없어서 마을 언니께 여기저기 좀 다녀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다. 추모관을 결정하는 일은 언제까지라도 미뤄두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호스피스에 있었으면서도 추모관을 결정하는 순간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다. 임종을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미리 결정하고 준비해두는 것이 사실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마음으로 결정해둔 곳을 가서 보고 와주십사 말씀을 드렸었다.두분도 이곳으로 하자고 말씀해주셨다. 거기, 남편은 그곳에 있다.
아이들과 나,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던 모형 믹스커피를 넣어주었다.
달달하게 마시던 커피. 남편은 늘 셋째가 타 준 커피가 제일 맛있다며 셋째에게 커피를 부탁하곤 했다. 그래서 셋째는 우리 집에서 음료부장이라고 불렸다. 고기를 좋아하고 잘 굽던 첫째는 축산과장, 집안 단속을 잘하던 둘째는 보안 이사, 막내는 사원, 우리끼리 직책을 부르고 심부름을 시키고 카톡을 하며 아파도 깔깔 웃던 그때. 남편은 우리에게 주고 간 추억이 많다.
막내가 아빠와 걸었던 한옥 마을에 가고 싶다고 했다. 투병 초기에 남편과 막내는 한옥마을을 천천히 함께 걸었었다. 그때 찍었던 두장의 사진.
똑같은 골목은 아니지만 나도 막내랑 남편처럼 천천히 한옥마을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자기. 나도 그대처럼 천천히 한옥마을을 걸었어요.우리 막내가 그때보다 이만큼 자랐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함께 손잡고 병원을 가려고 고속버스 타고 다니던 기억들. 같이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웃던 일들이 마음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다시 손을 잡고 다시 함께 걷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아빠 앨범을 꺼내 아빠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당신이 있었을 때처럼 화목하게. 그런 가정을 가꾸어갈게요. 그대가 없어 쓸쓸하지만.그대가 있었던 때처럼. 추억으로 힘을 내고 또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