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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해치 Aug 01. 2018

전기 영화 속 예술가

 얼마 전에 '에곤 쉴레Egon Schiele: 욕망이 그린 그림'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만, 아주 재미없었어요. 

영화는 계속해서 통념적인 예술가의 모습으로써 에곤 쉴레를 표현합니다. 

'와 내가 이 정도로 천재. 대신 성격이 안 좋지.' 


전형적인 '천재'의 모습으로 말이죠. 그러는 편이 영화 자체는 흥미로워질 수 있겠으나, 동시에 에곤 쉴레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영화를 본 사람들은 '역시 정상적으로 무난하게 살면서는 예술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할 뿐, 그가 어떠한 환경과 사건으로 그러한 그림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끝납니다.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

전기 류의 영화 중에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는 정말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기 영화는 대개 두 개의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요,

1. 주인공의 업적: 그 대단한 일을 어떻게 했을까.
2. 주인공: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여기 스티브 잡스의 두 전기 영화가 있습니다. 시간순으로 보면 2013년 에쉬튼 커쳐가 주연한 'Jobs'가 있고, 2016년 마이클 패스밴더가 잡스 역을 맡았던 'Steve Jobs'가 그다음에 개봉했죠.

첫 번째 'Jobs'는 전형적인 1번: 주인공의 업적을 설명하고 '이야 역시 잡스지' 하는 느낌으로 무난하게 관객을 이끌어 갑니다. 군데군데 인성적인 단점(?)도 보이지만, 자소서 속의 '본인의 단점을 기술하시오'처럼 단점 같아 보이지는 사실 단점이 아닌 것처럼 나옵니다. 뭐 그런 영화입니다. 

 어느 한 군데 걸리는 곳 없이 편안하게 보기 좋습니다. 잡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말이죠. 


반면 마이클 패스밴더의 'Steve Jobs'는 잡스가 살았던 환경, 인간적인 관계의 서술에 몰빵 All-in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는 잡스의 키노트 발표 직전에 벌어지는 드라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키노트 장면은 그냥... 생략해버립니다. 잡스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얼마나 쿨한 제품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환호를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개인적인 소감입니다만, 애쉬튼 커쳐의 잡스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 같다면, 마이클 패스밴더의 잡스는 일요일 밤 '다큐 3일'에 나오는 사람 같아요. 더 인간적이고, 동시에 많은 인간적인 결점들도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다시 '러빙 빈센트' 얘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전략적으로 똑똑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흐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수없이 감상할 수 있는데, 동시에 고흐와 함께 생활 했던 우편배달부, 술집 주인, 정신병원 의사 그리고 여관집 가족과 같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이 본 본 고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작 고흐 자신은 말 몇 마디 하지 않지만 말이죠.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고흐가 생각보다 성실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으며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때론 괴팍해지기도 했지만요.(현대의 정신과 의사들은 고흐의 정신질환에 대한 소견으로 30개 이상의 진단명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작품들은 광기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신이 멀쩡할 때 그렸다는 것 도요. (고흐의 전신과 의사인 Dr. 가셰는 그림이 고흐의 정신병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여 치료 중에는 그림을 못 그리게 했다고 합니다.) 이런 전기 영화는 주인공의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뿌듯함이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자기 전에 어떤 음악을 듣는지 따위를 알게 되면 막 기분 좋잖아요. 아마도 그와 비슷한 감정일 것 같습니다. 


무릇 전기 영화란, 저래야죠. 


p.s.

또 다른 전기 영화의 명작으로는 처칠을 다룬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있습니다. 

추천해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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