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와일드가 그랬습니다.
한 때 한국 대중음악 문화에선 표절과 라이브가 대단히 큰 이슈였습니다. 당시에는 신곡이 나오면 '비전문 표절 감정단: 근면한 네티즌' 분들이 이 곡은 이러 저러하여 표절은 아니라고 보임(또는 표절이라 보인다던지) 이라 판단해주거나, 음악 방송의 화면 한켠엔 '가수가 실제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라는 의미로 'LIVE'따위의 마크가 표시되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90년대 생 이후로는 다소 생경할 수 있겠네요.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니.
아닌 분야가 있겠습니까마는, 특히 미술은 표절을 구분하기 어려워 하지만 동시에 꽤 민감하게 여깁니다.
'저 화풍은 누구의 것을 따라했다.'
'저런 화면구성은 어느 작가의 것이라고 보인다.'
'저 주제는 누구누구가 주로 다루던 그것 이다.'
같은 식으로요. 특히 아직 자신의 화풍이 어느정도 구체화 되거나,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신진 작가들의 경우 저러한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속상할 수는 있으나 그럴 땐 '플라톤'을 떠올려봅시다! 꽤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어차피 오리지날 예술:Original ART는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된 그림도 결국 자연의 모방이며, 모방은 그 실체(실제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뛰어날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다는게 그의 이데아론의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있어 모든 예술가는 사실 잉여인간이었습니다. 비생산적인.
예술은 우리 삶과 자연을 모방하려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플라톤)
(단호)
(참고: '바보야'는 제가 붙인 겁니다. 오스카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대표적인것이 영화나 광고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우리가 현실로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한갓진 해변에 인적이 드문 까페에 앉아 'Long board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때마침 '요요마Yoyoma의 첼로 수트 No.3'가 흘러나옵니다. 저 (만들어진)장면을 티비에서 보고, 여름 휴가 계획을 세움니다.
실제 생활이 가상의 예술의 영향을 받아, 그것이 다시 실제화 되는 것입니다.
오스카와일드는 현대사회의 이러함을 표현한 것이죠.
많은 예술 작품들은 기성의 것에서 배우고 Learn, 그것을 비판하고 Criticize, 비틀면서 Tweak 탄생합니다.
동시에 우리 삶은 예술 작품들로 부터 영감을 받고, 더욱 풍성해지고, 그러한 우리 삶이 다시 '예술 행위'에 재료 Source와 영감 Inspiration 제공합니다. 서로 끊임없이 교감하는 거죠. 마치 에셔의 그림 같이요.
p.s.
이렇게 예전에 살았던 똑똑한 사람들의 말을 곱씹어 보는 건 꽤 재미있습니다.
괜히 나도 조금 똑똑해지는 지는 기분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