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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Mar 08. 2024

마음이 불행하면 산으로 가세요

시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기력해지고 몸이 쳐질 때마다 나는 운동복을 챙겨 입고 뒷산 피크로 향한다. 초록빛 나뭇잎들 사이로 찰랑대는 햇빛을 보면 그냥 매일 같은 자리에 있는 자연인데도 늘 다른 형태로 나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든다. 그 위로가 그리운 마음에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발끝에 매달려 집에서 쉬자고 애원하는 나의 나약한 그림자를 잡아채어 뚜벅뚜벅 걸어 오른다.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주말에는 딸아이가 학원에 간 짧은 틈에 내 조그만 루틴을 어떻게든 사수하겠다는 전투적인 마음으로 더욱 비장히 집을 나선다. 지난 토요일에는 날씨가 흐렸지만 하늘이 적당히 맑고 선선해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며 남편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역시나 남편은  등산을 갈 수 없는 백세 번째 이유를 대며 베개에 더 깊게 얼굴을 파묻었다. 함께도 좋지만 홀로는 더욱 좋은 푸릇한 산길을 오르며 소란스러운 일상의 시간을 접고 내 마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여전히 심지가 굳지 않은 나를 매일같이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할지, 어떠한 생각들로 건강하게 내 하루를 채울 것인지 골똘히 혼자 묻고 답하다 보니 하늘이 조금 어두워졌다. 비가 오면 좀 맞아도 좋지,라고 생각할 만큼 머리가 개운한 상태였다. 헉헉대는 들숨과 날숨의 고통을 잊을 정도로 내 마음을 스스로 두드리고 깊은 대화를 했다는 게 뿌듯하고 좋았다. 비록 질문에 정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상쾌한 기운이 폐부에 가득 차서  스스로가 맑아지다 못해  행복한 마음으로 온몸이 가득 찼다. 햇빛과 바람이 내 몸을 두둥실 일으켜주고 등을 토닥여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등줄기에 흐르던 땀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시가 되어 흥얼흥얼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산 정상을 800미터쯤 남겨두고 야트막한 평지에서  땀을 식히며 경쾌하게 걸어나가고 있을 때 후드득하고 빗줄기가 떨어졌다. 잔잔한 가랑비인 줄 알았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면서 주변에서는 하나둘 우산을 폈다. 경량 조끼에 패딩까지 따뜻하게 입고 왔건만 비에 젖은 솜뭉치들은 냉팩이 되어  내 몸을 단시간에 차갑게 만들었고 빨리 하산하여 딸아이를 제시간에 데리러 가야 한다는 생각은 불안감과 함께 나를 덮쳐왔다. 급기야 정상을 향해 비를 헤치며 마구 뛰기 시작했고 피크 정상에서 한순간도 쉬지 못한 채 일회용 판초 우비를 사 입곤 다시 하산길로 내달렸다. 오르는 길에 비해 짧지만 매우 가파른 하산길. 남자 어른이 입으면 적당할 큰 사이즈의 투명 우비는 바람 때문에 계속 말려올라가 젖은 패딩에 들러붙었고,  모자 부분은 자꾸만 훌러덩 벗겨져서 나는 내내 손으로 우비를 밑으로 당긴 채 움직여야 했다. 머리가 비에 젖는 게 너무 싫고, 지금 나는 너무 춥다.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 찰나, 정말로 조심스러운 한 발짝이었는데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미끄러졌고 땅을 짚은 손에 통증이 느껴졌다. 비에 젖어 꽁꽁 얼었던 손은 추위로 인해 퉁퉁 부어있었고 감각은 없었다. 주먹을 펴자 찢어진 손가락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냥 찰과상 정도라고 생각하곤 코풀던 휴지를 둘둘 말아 손가락에 쥐고 다시 결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굳이 이 흐린 날 등산을 해서 이 생쥐 꼴로 엎어지고 다쳤다는 생각에 아까까지 개운했던 마음은 흙 구름으로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욕인지 아닌지 모를 비관의 말들을 혼자 쏟아내며 하산 이후의 일정을 다시금 곱씹었다. 뜨거운 물에 목욕만 하면 이 몸살 기운은 싹 날아갈 것이며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머리 말리고 딸을 데리러 남편과 출동한다, 그리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벨기에 식당에 가서 감자튀김과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샐러드를 먹는다. 내 계획안에 있는 것들을 문제없이만 진행하면 비 맞아서 꽁꽁 얼었던 몸과 계속 말려올라가서 무용지물을 넘어서 짐이 되어버린 우비와의 사투, 반대쪽에서 올라오던 등산객들이 더 놀랄 만큼 세게 넘어진 고통과 손의 상처가 다 무색해질 거라고 입을 앙다문 채 주억거렸다. 아름다운 생각들은 온데간데없이 몸이 화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설상가상 산에서 내려와 아파트 로비에 거의 도달했을 때 비가 멈췄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은 생각에 우비를 벗어  쓰레기통에 확 던져 넣곤 집으로 달려올라 갔다. 푸릇한 생기를 머금었던 나의 마음은 손끝의 고통과 추위, 촉박한 시간에게 짓이기듯 밀려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상황의 작은 변화에도 이렇게 일촉즉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스스로의 나약함이 싫었지만 나는 감정의 무게 추가 무겁지 않은 사람이기에 상황을 제대로 바로잡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오전 열한시가 되도록 아까 그 자세로 포근하게 잠들어 있었다. '아, 나도 부지런 떨지 말고 그냥 저 안온한 침대에서 안전하게 잠이나 잘걸'이라는 생각을 하며 옷을 벗는데 얼얼했던 손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둘둘 매었던 휴지를 풀어보자  오른손 약지 손가락이 일 센티가 넘게 찢어진 채 벌어져있었다. 몇 년 전 수박과 함께 손가락을 썰어 응급실에 갔었던 기억이 고통스럽게 떠오르며 그보다는 훨씬 얕은 상처니까 집에서 치료하자, 치료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며 울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씩씩하게 방수 테이프로 손을 감고 계획대로 따뜻한 물로 재빠르게 목욕을 했다. 그리곤 예정대로 남편과 아이를 픽업하여 식사를 하고 간단히 장을 보는 등 오후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손가락 상처는 본색을 드러내는 것처럼 점점 화끈거려왔고 시간이 갈수록 너무 아려서 진통제를 먹고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꿰매면 족히 백만 원은 넘을 거야라고 말은 내뱉었지만 나는 도저히 환부에 마취주사를 맞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난번에 손가락 썰었을 때 응급실에서 꿰매기 전 맞았던 마취주사의 고통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제왕절개 후 고통보다 극심했던 기분이다. 고통을 극대화했던 건 병원에 실려가서 꿰매기까지의 시간 동안 불어났던 공포였다. 의사선생님은 자비 없는 손길로 찢어진 환부를 더 넓게 벌려서 뻘건 베타딘을 퍽퍽 바르시곤 한참을 사라졌다 돌아오셨다. 한 7분쯤이었을까. 차라리 내가 베타딘때문에 비명을 지를 때 바로 마취주사를 찔렀으면 좋았을 텐데 선생님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 옆에 두고 가신 (생각보다 거대했던) 마취주사기를 보며 벌벌 떨어야만 했다. 다시는 절대 그 공포 속에 나를 두고 싶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친구가 크게 걱정하며  벌어진 상처에 쓰는 병원용 밴드 스트립을 급히 가져다주었고 그걸로 손가락을  묶은 채 불편한 일주일을 보냈다. 오른손 약지 하나가 제 기능을 못할 뿐이었지만 샤워도, 양치도, 요리도 모든 게 힘들었다. 괜스레 몸도 마음도 쳐져서 아침 산책도 거르고 필요한 일과 이외엔 침대 속에 누워서 우울감에 잠식된 나 자신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요가 수업에 가서도 손을 쓸 수 없으니 제대로 동작을 하지 못했고 그날 이후 날씨가 좋아졌지만 산을 다시 오르는 것이 무서웠다. 마치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마주칠까 봐 두려워서 어딘가를 가지 못하는 듯한 마음으로 또 같은 자리에서 넘어질까 봐 산에 가고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매일 산을 오르는 친구가 데이트 겸 산에 올라가서 커피 한잔하자고 제안했고 쭈뼛거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시끄러운 공사 소음과 일상의 번잡함으로 가득한 센트럴을 벗어나서 산속으로 들어가니 다시금 숨이 트였다. 평소에 숨을 잘 쉬지 못하는 편인데 갈색 흙을 밟고 초록빛 나무 밑에서 새소리를 듣는 순간 비로소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다. 왜 손까지 다쳐서,라는 마음은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긍정하게 되었고 다리를 다치지 않아서 이렇게 또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감사함으로 이어졌다. 생활패턴이나 건강 상태가 비슷한 친구와의 깊은 산중 대화는 늘 부지런히 땀 흘리며 스스로의 건강과 마음을 돌보자는 것으로 귀결되어 내가 다시 산을 오르게 된 이 한 발짝이 나의 삶을 얼마나 단단하게 하고,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내려오는 길에서 내가 넘어진 장소를 지나며 산과 무언의 화해를 했다. 그리곤 마음이 다시 뜨겁고 개운하게 차올랐다. 다시 내 가슴이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하는 마음으로 활짝 열렸고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빛에 다시 시를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활짝 핀 진달래 무리를 보면서 언제까지고 내가 이렇게 마음에 시를 품고 살수 있는 사람이기를 빌었다. 외부의 작은 침입에도 갈대처럼 휘청이는 나약한 영혼이지만 꽃, 나무, 햇빛, 아기, 하늘 같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그 빛으로 타인과 주변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좋은 건 좋은 대로, 안 좋은 것도 잘 다독여 품고 갈 수 있는 단단함이 솟기를. 그래서 마흔이 되었을 때는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불혹의 도리에 부끄러움이 없이 선하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매일같이 산에 올라야지.


홍콩은 벌써 완연한 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반팔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무작정 걷기만 해도 볕이 좋아 행복한 봄. 몇 년 만에 손가락을 또 다쳐서 속상하지만 봄이니 우울함을 떨치고 아지랑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마음의 시들을 적어내려가는 것에 집중해야지.


내일은 다친지 1주일 되는 기념으로 또 산에 가보려고 한다. 마음이 힘들 땐 자연으로 가세요. 산에서 숨 쉬어 보세요. 한결 맑아진 나 자신을 잠시나마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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