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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꾸준히 쓰는 이유

브런치 연재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다면, 오버일까요?

by 카리나

6년 전, 2019년 10월.

'한국에서 175cm 여자가 듣는 말 BEST 3'라는 제목으로 키 큰 여자의 삶을 다루는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키 큰 여자로 한국에서 살면서 꾸준히 듣던 말,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덕분에 겪었던 우당탕탕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생각보다 키 큰 여자로 사는 게 좋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했다. 모델이 아닌 평범한 키 큰 여자분이 글을 읽고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4년 전, 2021년. 좋은 직장을 뒤로하고 스타트업씬에서 PR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실무자이자 리더로 일을 시작했다.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된 것은 어떤 거창한 포부나 각오 따윈 없었다. 지독한 경험주의자로서, 늘 생각 없이 일단 시도해 보는 탓에 겁도 없이 뛰어든 테크(Tech) 스타트업의 세계. 단순히 IT업계에서 PR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7년 차 직장인은 그렇게 '고장난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수많은 스타트업에서 외치는 '애자일(Agile)’의 실천은 솔직히 어려웠다. 다행히도 업무를 정의하고 조직 체계를 구축하며 성과를 내는 것은 잘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큰 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다양한 인간상과 협업하며 예상치 못한 소통의 딜레마를 겪게 되었다. 그렇게 번아웃과 친구가 되었다.


그동안 홍보대행사에서 AE(Account Executive)끼리 고민했던 것은, 오직 고객사의 PR과 콘텐츠 마케팅의 성과를 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산에 민감한 스타트업에서는 각 부서와 최소 예산으로 협업하며 성과를 만들고, 많은 예산 지출 시 그 돈을 왜 지출해야 하는지 설득해야 했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 한국말인데 어쩜 서로 이렇게 이해를 못 할까'는 생각이 매일 들며 지쳐갈 즈음, 브런치에 '고장난 직장인' 시리즈 연재를 시작하며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에서 상식 밖의 상황과 어마어마한 사람(?)을 상대하며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뤘다. 실제 경험을 녹인 탓일까. 글을 쓸 때마다 폭발적인 댓글과 좋아요를 받는 영광을 누렸고, 구독자분들과 '오늘만 더 잘 버텨봅시다'라며 위안을 주고받았다.


'나처럼 녹록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
나만 힘들고 외로운 게 아니었구나.'


종종 다음 앱(App)의 '직장인' 섹션에 메인으로 올라갈 때도 성취감이 컸지만, 무엇보다도 브런치에 끄적끄적 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것이 더 뿌듯했다. 번아웃으로부터의 회복의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며 쓰나미처럼 덮쳐온 스트레스는 ‘고장난 직장인’ 연재를 통해 저 멀리 우주 밖으로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모든 직장인의 커리어 서사가 '회사 내에서의 성장'에 있지 않다는 것. 어쩌면 그동안 성장과 발전을 추구해 온 나를 누군가는 피곤하게 여길 수 있겠다는 것. 조금은 충격적이었지만, 브런치 연재를 통해 메타인지까지 강화할 수 있었다.

지난 6년간 꾸준히 쓴 글이 여러모로 세상을 보는 관점, 가치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글을 꾸준히 쓴 덕분에 12년 직장생활에서 종종 마주하는 고비를 현명하게 넘길 수 있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계획이다. 나처럼 번아웃을 겪었거나 번아웃의 루프로 빠져들고 있는 직장인을 막기 위해, 재학 중인 연세대 심리과학이노베이션대학원에서 배운 심리학을 곁들여서 일하는 나의 심리 구조를 해부하는 글을 연재하려고 한다.


'일하는 나를 해부합니다'라는 브런치북 연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은, 극심한 번아웃과 불안장애를 겪는 직장인에게 글이 닿아서, 글을 읽는 그 순간만이라도 독자의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우연히 나의 글을 발견했다면, 그날 하루만이라도 스스로를 어르고 달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그날 하루만 더 버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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