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왜 이러시죠?
스타트업 4년 차. 온갖 인간 군상들을 겪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맷집이 생겼고, 겪을 만한 인간 유형은 모두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공교롭게도 최근에 굉장히 흥미로운 인간 유형을 발견했다. 게다가 '팀장'이자 리더가 너무 뻣뻣하고 뻔뻔하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사악하게 혼자 씩 웃었다. 스타트업 인류학자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인간 유형이기 때문이다.
오늘 가져온 이야기,
무책임한 리더 또는 팀장이 자주 하는 말을 가져왔다. 무려 세 가지다.
이 말을 자주 하는 팀장 이상의 직급은 대체로
1. 꼰대이고 (나의 브런치에서 꼰대의 정의는 '배움을 그만 둔 사람, 호기심 없는 사람'이다.)
2. 융통성 없으며,
3. 보수적이고
4. 책임 회피에 아주 능하며,
5. 팀장이 꼭 가져야 할 역량, '문제 해결 능력(problem-solving skills)'가 없다.
특히, 만약 당신이랑 일하는 중간연차의 팀장 (보통 10년 차)이 이런 말을 한다면, 매우 안타깝지만 그 사람에게는 딱히 배울 리더십이 없다는 brutal truth을 알린다.
오늘도 서론이 길었다. 바로 시작해 보자.
무책임한 리더는 이 말을
1. 자신도 해보지 않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신규 프로젝트를 맡게 되거나,
2. 기존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갑자기 투입된 상황에서 주로 이 말을 많이 이야기한다.
쿠션어의 개념이 아니라, 업무가 잘못될 경우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이야기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 말을 스타트업에서 조직문화를 셋업 하는 HR임원이나 파이낸스를 같이 하는 경영지원팀의 무책임한 리더들하면 더 황당하다.
"저는 지난 회사에서 커리어를 처음 시작해서 10년 간, 보수적인 제조업 회사에서만 묵묵히 숫자만 보던 사람입니다. 이직을 많이 안 해봤어요. 스타트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회사에서만 근무하다 보니 다른 회사, 특히 스타트업들이 어떤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라던가,
“전 다른 분들처럼 여러 회사를 다닌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조직문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라며 '나몰랑~' 식으로 고개를 매우 빳빳하게 들고 답답하게 구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 한 곳에서 커리어를 10년 넘게 쌓아온 것은 칭찬할 만 일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제조업 중소기업에서 일하셨더라도 손과 눈이 있으시면 인. 터. 넷. 에서, 적어도 '챗. G.P.T'에게 물어보는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아무리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나 타 기업의 기업문화가 어떤지 모르더라도, <우아한 형제들>이라든지, <토스>와 같이 유니콘 스타트업을 넘어선 기업들의 경우 조직문화를 어떻게 셋업 하는지 그들의 홈페이지, 아니면 세미나를 통해 그들의 조직문화와 채용에 대한 가치를 전하고 있다. 눈이 있고 손이 있으면 키보드를 두들겨서 찾으면 되는데, 매우 답답하게 자료를 찾아볼 생각은 안 하고 '저는 몰라요. 저는 한 곳에서 오래 일해서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게 과연 리더이자 팀장이자 임원이 하는 말인가?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굉장히 일잘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팀장들의 속을 까보면 사실 자신의 전문 분야조차 내로남불인 경우가 많다. 자신의 후배가 회계 실수 한 것은 그렇게 엄격하게 주의를 주면서, 본인이 틀리고 실수한 것은 "아, 뭐 제가 팀장이다 보니 할게 많아서 놓쳤네요, 그럴 수도 있죠"라고 하는데 - 존ㄴ 선택적 완벽주의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진짜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
아무튼,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말. 책임을 지기는커녕 난 모르겠다며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를 포기하는데 - 솔직하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배울 의지를 표명하는 것과 달리 '모르겠으니 후배들아, 니들이 해와'라는 심보인데..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같이 개선하고 디벨롭할 의지를 보이고 협업하는 것이 요즘의 리더십이다.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나타난다면 개인적인 관계에서라도 손절할 것을 권한다.
어쩌라고.^^.......ㅅㅂ
본인이 리더고 팀장이면 적어도 팀원들에게 어떤 어려운 일이나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리더십의 상도덕이다. 하지만 무책임하고 리더십 없는 팀장들은 그런 것 따윈 없다.
이런 팀장의 특징은 위에서 일을 받을 때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받는다. 질문이 없다. 임원과 '혹시 이건 이렇게 까지 해도 될까요? 타임라인에 맞춰서 하긴 하겠습니다만, 혹시 이런 부분을 추가하다 보면 시간이 약간 빠듯할 것 같은데 타임라인의 조정 여지는 있나요?'와 같은 질문, 현상, 논의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냥 임원이 하라고 했으니 가져와서 자신의 팀에게 일을 던. 지. 는 식이다.
일을 받은 팀은 어안이 벙벙하고 멍멍이 새끼- 하고 혀 끝까지 욕이 튀어나오는 걸 겨우 참는다. 상위 관리자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 결정에 대해 논의, 개선, 조정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팀장은 오히려 있는 게 더 방해가 된다.
게다가, 군말 없이 일을 받아와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해서 퍼포먼스가 좋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팀장이라면, 리더라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윗선과 자신의 팀 사이의 리소스, 퍼포먼스, 한계, 조직 내 정치상황, 인간관계 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 퍼포먼스를 내고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노력이 바로 리더십이다.) 하다가 막히면 자신이 팀에게 도움이 되어주기도 해야 하고, 또 윗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조정을 통해 실무적인 변화도 줘야 하는데- 어쩔 수 없어요? 눈을 죽탱이로 때리고 싶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리더 밑에서 일하면, 일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영원히 배울 수 없다. 팀장조차 문제해결 의지가 없고, 위에서 시켜서 한다는 - '주체성 없는 것'자체가 팀장의 아이덴티티인데, 문제해결 능력은 개뿔. 리더십조차 배울 수 없다. 이런 문화로 된 스타트업이라면 퇴사하는 것이 낫다.
진짜 눈깔을 찔러버리고 싶다.
간혹, 팀이 추진한 일이 문제가 되었을 때, 자신의 팀원들을 감싸주지 않고 팀과 자신을 분리시켜서 '나만 살겠다'라고 이야기하는 팀장들이 있다.
저렇게 '나(팀장)'와 '팀(너희)'를 구분하는 말을 주로 쓰며, 자신의 지시나 관여는 '너희(팀원들)'이 들어주지 않은 것이어서 프로젝트가 산으로 갔다는 식으로 팀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주로 이들은 아래 3가지 상황에서 이런 말을 주로 쓴다.
상황 1. 프로젝트 방향 설정 오류로 인한 실패
"내가 처음에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잖아."
"너희가 상황을 잘못 파악한 거야."
"아 난, 그냥 아이디어를 낸 거야.
너희가 실무자로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린 거니까, 너희가 책임지는 거다?"
상황 2. 예산 초과
"애초에 난 예산 초과를 허락한 적 없어.
기안? 너희가 올렸길래 보긴 했지만 내가 승인했니?
답답해서 너희가 그냥 알아서 예산 집행한 거잖아.
뭐 내가 세부사항 하나하나 다 보면서 실무까지 해야겠니?"
상황 3. 인사 평가 문제
"나는 뭐,, 이번에 새로 도입되는 평가방식을 '제안'한 것뿐이지
그렇게 하라고 강제하고 명령한 적 없어~
너희가 결국 결정해서 진행한 거니까, 내 책임은 아니잖아."
진정한 리더라면 애초에 팀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거나 결과가 안 좋을 경우 자신이 총대를 메고 깔끔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만회할 다음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무책임한 팀장은 리더로서 '너'와 '나'로 분리시켜 책임을 회피하고, 팀원들을 오히려 방패막이로 사용한다. (그리고 뭔가가 잘 되면 그건 또 지들 아이디어다.)
이런 리더를 만났을 때의 대처 방법은 조금 피곤하지만 정말 하나하나 기록하고, 녹음하고, 서면으로(주로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남겨놓아서 해당 팀장이 책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잘되면 내 탓, 잘 안되면 팀원 탓을 하는 팀장들은 똥꼬에 불을 지져야 한다.
"난 이직을 많이 안 해봐서, 솔직히 뭐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이직 많이 해본 00 씨가 아이디어 내주세요"라고 하면 그 사람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기에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최대한 같이 논의하기 위해 방법론을 알려주고, 필자의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거듭 말한다. 필자, 사회생활 하는 직장인이다. 그저 꼰대 레이더와 ㅂㅅ감지 레이더가 발달해 어쩌면 불쌍한 영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