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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나 Oct 03. 2024

30대 후반, 성장지향을 지양하겠습니다.

지독한 성장추구, 성취지향자가 성장하지 않기로 한 이유

1.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난 2017년 이후로 뭔가 딱 내세울만한 간판(label)이 없었다. 

열심히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왔다. 정말 열심히 살아온 건 맞다. 똑같은 문장을 두 줄이나 쓰는 것은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실력은 탄탄하게 쌓을 수 있었으나 한국사회 기준으로 내가 낸 성과는 어떤 간판이 없었다. 누구나 아는 이름의 회사, 프로젝트 경험, 대단한 수치 등 소위 한국 사회에서(아니, 어쩌면 서양이 더 할지도.) 내세워 비교할 수 있는 '라벨링(labelling)'할 수 있는 성과는 없었다.

사실 태어나서부터는 돈돈돈하는 일부 한국인들이 원하는 조건를 다 갖추었기에 내게는 라벨링이 그다지 필요 없었다. 전문직(약사)딸, 개포동 출생 10년 살고, 서초동에서 20년. 8학군 출신에 걱정없이 살아왔다. 물론 누구나 그러듯 부침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고생은 하지 않은 내게 간판은 중요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환경이었으니 언제든 그만둬도 되었으니 힘들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게 오히려 어쩌면 독이 되었다. 돌이켜 보자면, 나는 다행히도 연봉은 올렸을지는 몰라도 반복되는 어떤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수직이동이 아닌 수평 이동을 해왔던 것 같다.



2. 지난 2017년 3월부터 2024년 9월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고 대견하다고 말해줘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 공감, 사랑, 존중이 어쩌면 없었기에 그렇게 힘들었고 격려는커녕 스스로를 더 착취하면서 괴롭혔다고 생각한다.


3. 왜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push myself a lot 했을까.

오늘 태국 방콕에서 명상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2015-2017년의 연애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나는 첫 연애에서 사랑을 늦게 깨닫고 좋은 사람을 놓쳤었다. 당시에는 소중한 줄 모르고 함부로 대하는 어린 나 자신이 한 행동이 후회되었다. 이후 내가 한 다짐이 있었다. "다음에 만나는 사람은 정말 사랑을 많이 줘야지, 다시는 후회하지 않도록. 늦게 깨닫지 않도록."

4.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고, 상처로 끝났다.

2017년 어느 봄날 끝난 그 연애는 6개월 후 내 심장에 비수를 꽂았고, 그렇게 나는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어떻게든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생각해 보면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걸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해서 헤어진 것이라고 지난 7년 내내 생각했어서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스스로 메우려 미친 듯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5. 당장 내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은 더 좋은 직업을 가지거나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스펙적으로 부족한 걸 채웠다. 2017년, 2018, 2019, 2020년.. 모두 나는 주중/주말을 쪼개 tesol 자격증, technical writer 과정 수강, 외대 통번역전문기초과정을 수강하면서 공부로서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세웠다. 재미있게도 공부가 내 도피처였고, 이걸 통해 좀 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랐다.


6.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2015-16년 주니어였던 그 당시 내가 정말 사랑을 많이 주던 사람이 내 직업과 벌이에 대한 망언 때문이었다.

"너 지금 PR 초봉이 2500만 원이면, 월 200 버는데, 난 전문의 따면 월 2500을 버는데 - 그냥 집에서 살림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러게 왜 PR로 커리어를 시작했어? 왜 그걸 전공한 거야?" 이것에 내가 정말 많이 상처받았던 것 같다. 상처받았으면 제대로 대학원을 가던가 그래야 하는데, 돌이켜보면 겁이 많았고 핑계가 많았다. 그냥 대학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들으며 '이거라도 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저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그럼 내 자아실현은?"이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상대방의 대답은 "너 자아실현이 중요해? 어차피 돈은 내가 잘 벌면 되고. 난 부모님이 힘들게 나를 길렀고 이혼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엄마가 그냥 오롯이 엄마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였다.


여우같이 굴었어야 했나 싶다. "알겠어."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살뜰히 꾸리고 대학원이야기를 꺼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미국 대학의 디자인 교수인 사촌언니가 이야기 했다. 하지만 내게 상처 준 저 사람은 저게 진심이었다. 해서, 참고 결혼했다면 아마도 1,000% 이혼했을 것이다.


7. 돌아와서,

어정쩡한 스펙을 쌓으니 당연히 어정쩡한 회사를 가고. 스타트업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2017-2024년은 내게 고통스러운 한 해 한 해였다. 그리고 이제 이걸 끝나고 싶어서 스타트업에서 더 참고 견뎌가며 근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했다. 지난 7년 동안 쌓인, 이상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한 상처. 연봉은 올랐지만 그만큼 받는 스트레스. 그리고 실력조차 쌓을 수 없는, 어찌 보면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나의 지난 7년간의 원동력이었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성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앞길이 깜깜했다. 그리고 안에 내재돼있던 고름이 터져버렸다. 현실적으로 나는 이직을 자주한 탓에 조용히 설렁설렁 다녀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7년간 쌓아온 희로애락이 '번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다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8.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2015-2017년의 연애에서 받은 상처가 미치는 영향력을 이번 태국 방콕 여행을 기점으로 끊어내는 것이다. 10년 전 그 연애가 아직까지 나에게 상처이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말 기가 막히다.

-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 여행/출장지에서 유독 그렇게 남을 배려해 편하게 움직이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이유(푸껫에서 짐 실수로 인해 나를 윽박질렀던 그 사람 때문에 여행 및 출장 스타일 역시 영향을 받은 것을 오늘 태국 길거리를 걸으며 알았다.)

- 사랑을 많이 줬지만 거절당했다는 그 비참함,

- 그리고 그 거절에 대한 상처를 '성장'으로 승화시키며 어설픈 스펙을 쌓아온 행보,

- 스스로 실수하지 않고 완벽주의를 추구해서 스스로를 목 조르는 태도,

- 그리고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도 자꾸 성장(growth)을 강요하는 몹쓸 행동,

-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나에게서 앗아간 여유다.



9. 2015년 이전, 10대와 20대의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얼마나 여유 있는 사람인지 잘 알 것이다.

그 여유를 바탕으로 사랑을 아낌없이 준 결과가 이별이라는 것에 아마도 나는 큰 상처를 받아서 지난 7년 동안 아주 깊이깊이 상처 난 마음속 한구석을 외면하고 '성장!',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을 외쳤다고 생각한다. 그 성장추구가 나의 물리적인 연봉상승 등으로 이어지고 다양한 상황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은 맞지만, 원래 갖고 태어난 '여유'를 없앴다. 오래전 2년의 상대방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지독한 회피형처럼 마음속의 상처를 제 때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기에 7년 후에 이렇게 다른 것들과 함께 터져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뭐가 문제이고, 내게서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 특유의 여유를 찾아 40세를 맞이하기 위해,

지난 험난한 2017-2024년을 마주하고, 돌아보고,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려고 한다.


2024년 10월을 기점으로, 온전히 나로서 살기 위해 나는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칭찬하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감사와 다름의 이해를 실천하며 살 것을 다짐한다.


내가 옳다는 것, 내가 맞다는 생각부터 내려놓는 것을 시작한다.

성취지향을 지양하는 것부터.


태국 방콕에서,

Karina

https://litt.ly/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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