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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밤과 선명해진 아침

by 내꿈은해녀

드디어 면역억제제 끊은 지 2주가 되었습니다.
회사동료가 축하의 의미로 참치를 사주었고, 2년 동안 조심하느라 먹지 못했던 참치를 드디어 먹게 되어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많은 이야기,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와 양치를 하는데 혀끝에 이물감이 느껴졌습니다.

혓바늘이 돋고 혀끝이 많이 부었습니다. 놀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다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목까지 부으면 어쩌지.. 어쩌지... 목구멍이나 혀가 부어 숨이 막히는 건 아닐까…’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제게, ‘숨이 막힌다’는 공포는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황급히 응급실을 검색했고, 다행히 집에서 15분 거리에 병원이 여럿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어.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 다짐했지만,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습니다.

심장은 튀어나올 듯 거세게 쿵쾅거리고 시야가 어두워지는 듯 머리는 띵하며 아득해집니다. 목이 자꾸 부어오르고 숨이 벌써 안 쉬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신과 약을 먹으려다, 혹시 약 성분이 치료에 상충될까 염려되어 결국 약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심장을 부여잡고 입안을 들여다보며 불안해하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한밤중 켜놓은 환한 불빛에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문득 ‘나는 알레르기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었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당시 당황스러워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던 거지요.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먹는 약이 많아지고, 음식도 바뀌다 보니 체질이 달라진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아직도 부어있는 혀를 만지며 걱정을 하다 다시 잠들었습니다.


기나긴 밤이 지나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무사히 아침을 맞이했구나”였습니다.
혀의 상태를 살펴보니, 아직도 부어있습니다.

왜 이럴까 고민하다 아. 낮에 먹었던 뜨거운 미더덕 때문에 덴 것이 원인 같았습니다.
입천장도 까져 있었고, 혀끝도 화상을 입은 듯했습니다. 바쁜 업무에 신경을 못쓰다가 마음이 풀어진 밤에 양치하다가 발견된 거지요. 어젯밤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전혀 상상도 못 했었고요.


어릴 때부터 저는 ‘숨 쉬는 방법을 잊으면 어떡하지’, ‘손발을 움직이는 신호를 뇌가 잊어버리면 어쩌지?' 같은 생각에 종종 사로잡혔습니다.
이런 불안은 성인이 된 후 힘든 일들을 겪다가 공황장애로 나타났고, 실제로 패닉 상태를 경험하하면서 두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숨’이라는 것은 늘 가까이 있지만,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대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릴까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하고요.

어젯밤의 두근거림과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목이 부어있는 이물감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아마 그 좋아하는 참치를 다시 먹게 되는 날은 한참 후가 될 것 같습니다.


그 긴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한 지금,
비상용 공황약을 파우치에 하나 더 챙겨 넣었습니다.

그래도 단순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숨 쉬며 살아가는 지금, 더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않고, 후회 없이 살아가야겠다고 말입니다.

힘들게만 느꼈던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주말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낍니다.


요 근래 저의 큰 고민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현재를 조금 힘들게 살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편안함을 누릴것인가 ’입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제 생각은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현재를 만족스럽게 살아야겠습니다.

내일도, 아니 오늘 밤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삶의 공포는 어느 순간 찾아오며 어제밤의 저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순간만큼은 후회 없이 살아야겠습니다.

아직도 목이 갑갑한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제 삶의 방향이 정해지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당장 오늘 하고 싶은 거 하나를 합니다.


바로 미래를 위해 공부해야지, 내 취미 따위를 할 시간이 어딨어 했던 나를 멀리두고,

내 행복한 취미생활인 글쓰기. 이 글을 먼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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