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2020)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국내 첫 개봉이 2004년 10월이니 벌써 17년이 흘렀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영화이고, 어떤 세대에게는 첫(옛) 사랑의 심벌 같은 작품. 긴 세월 잊히지 않고 추억과 함께 되새겨지고 있으니 이제는 사랑에 관한 영화 중 클래식이라 불러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거다. 새삼 아직 이십 대였던 그 시절의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해져 낡은 블로그를 검색해보았다.
"사강의 소설을 좋아하고 계란말이를 잘하는 조제를 좋아하지만. 조제가, 세상 속에선 장애인 쿠미코이기에 겪는 츠네오의 갈등을 다루는 작품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걸을 수 있었다 해도.. 둘은, 결국은 헤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마지막 전염병인 듯 '다시 고독해지고' 미아가 된 조개껍질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모두가 마음을 절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지만.. 결국은 그런 거다.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제처럼 "네. 알아요" 해야 함은 안다." @my blog _ 20 Feb. 2005
특별한 설정이지만 보편적인 사랑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조제와 츠네오의 이야기에 제법 공감이 되었나 보다. 마음을 절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하는 심정으로.
어쩌다 중년의 관객이 되어 조제를 다시 만났다. 은근한 동질감으로 오래 좋아한 동년배 영화감독 김종관의 <조제>(2020)로. 제목에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없다. 영석과 조제의 사랑과 이별은 츠네오와 조제의 그것과 다르다. 일본 원작이 웃음과 눈물의 순간들을 모두 담은 아련한 폴라로이드 포토북 같다면, 한국 리메이크는 낡은 사진첩을 들추며 "네가 옆에 있다고 생각할 거야" 되뇌는 기분이다. 컬러풀한 색감보다 빛과 어둠의 명암이 눈길을 끌고, 당돌한 소녀 조제 대신 차분한 연상녀 조제가 극을 이끈다. 같은 스토리이지만 어른의 화법. 목소리에 나이가 드니 엔딩도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영화를 보는 내가 어른이 된 게 차이의 다일지도 모르겠고.
김종관 감독의 <조제> 개봉 소식에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오랜만에 다시 볼까, 하다 말았다. 대신 CD장에서 OST를 꺼내 들었다. 일본의 록밴드 쿠루리(Quruli)가 음악을 맡았는데, 영화만큼 음악도 좋았다. 브릿팝의 영향을 받은 90년대 일본 밴드 느낌. 특히 마지막곡 'Highway'는 그 시절의 내 Favorite 중에 한 곡이다. 아마도 싸이월드 배경음악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