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남해
남해를 방문한 건 정말 뜨거운 8월이었다.
이렇게 푸르고 뜨거운 날이었는데, 보리암은 구름 속에 파묻혀있었다. 보리암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오래된 절이다. 깊고 높은 산에 놓인 절인데, 주변 환경이 어떤지 이 날은 전혀 알 수가 없았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그저 희뿌연 구름, 구름 사이만 걸었다. 보리암은 남해안 상주면에 위치한 사찰로, 자세한 소개는 아래 링크 참고.
주차장 입구에서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주차를 했다. 그리 붐비지 않는 날이었는데도 30분은 기다린 것 같으니 성수기에는 대기시간이 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자.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자 사방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희뿌연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야 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습도까지 높으니 묘하게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생각보다 체력이 소진되는 길이다. 한 치 앞만 오면서 백색의 공간으로 직진, 또 직진. 길의 끝이 짐작 가지 않아서 좀 더 길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여기가 기도빨(?)이 잘 듣는 곳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안내되어 있어서 좀 웃었다.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해수관음 성지로서, 이 곳에서 기도발원을 하면 그 어느 곳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 받는다고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 사찰들이 모두 아름다운 곳이라는 건 알 수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일부라 주변에 탐방로도 잘 발달되어 있다. 산과 바다를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니 다음 기회엔 등반 준비를 해와도 좋겠다 싶었다.
다만, 좀 만만치 않은 계단이 있다. 일단 도착하면 본당까지 가기 위해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한참을 내려가도 끝이 나오지 않자, 내 뒤의 남학생 둘이 말을 나눈다.
"이 길을 다 내려가면, 다시 다 올라와야 한다는 얘기잖아."
"그렇지."
"너무 힘들겠는데?"
"그렇다고 안 갈 거야?"
"아니지."
그렇다.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구름에 덮인 사찰이 있었다. 평소라면 아마 산과 바다가 보이는 풍견이 아닐까 싶었지만 구름이 펼쳐진 모습도 장관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다 백색이었다.
돌아오는 길도 구름을 먹으면서 한참을 걸었다.
꿈같았다는 게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몽환적인 풍경을 뒤로하고 주차장에 도착했을 무렵엔,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하고 뜨거운 초록의 여름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꼭 다시 와야지 생각했다. 그땐 구름이 있어도 아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