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이 있으세요?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만 재촉하는 새벽입니다.
또 곧 해가 뜬다는 사실에 어둠이 다 밀려나기 전 서둘러서 담배 한 대를 더 태울까 고민 중인 새벽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무려 5년이 지나 인사를 전합니다.
물론 제 글은 독자가 없는 저만의 방백이지만요. 더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제 방백의 관객은 독자가 아니고 이렇게 5년이 지나 다시 글을 곱씹는 저처럼 미래에 닿았을 저에게 전하는 방백이네요.
아침이 오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전에 서둘러서 담배 한 대, 아니 세 대만 더 태우고 오겠습니다.
요즘 새로운 버릇이 들었거든요. 담배는 연달아서 세 대를 태웁니다.
편지나 글은 독자에게 글쓴이의 시간을 납작하게 만들어 전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중간에 다녀온다는 인사는 제법 웃기지만 굳이 전해보겠습니다. 다녀올게요.
금세 다녀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올해 11월은 특이합니다. 이 글을 쓰는 2023년의 11월 23일에 이르러서야 추워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잠시 추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영상 14도까지 오르면서 패딩을 다시 넣었어요. 어제는 낮은 따뜻했고 밤이 돼서야 추워졌으니 가을에 출근해서 겨울에 퇴근한 셈이 되었네요. 가을을 좋아하는 저는 여름이 꺾일 무렵부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을은 짧으니 누려' 그런데 올해는 유독 가을이 길었네요. 좋다고 해야 할지 지구에게 미안해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이기적이게도 물리적인 시간과 별개로 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은 더 좋습니다. 이제야 겨울이 되었어요.
기록하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원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습니다. 혼자이기도 했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기도 했었지만 다시 혼자가 되었고 새로운 가족도 늘었네요. 어제는 이상형과 비슷한 사람을 만난 것 같습니다. 자기 확신이 없는 듯한 말투라 좋아하지 않는 어미지만, 확실하지 않기에 같다는 표현을 써봅니다. 새삼 내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데 나를 둘러싼 환경의 이야기를 하는 게 썩 불편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나를 위해 마저 해보겠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제가 하려던 일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전공과 관련이 없는 일들로 매번 나를 새롭게 소개하고 나의 안으로 들이기만 했던 일을 하다가 관성처럼 해오던 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실 돌아왔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발 뺄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불완전한 미래를 소개하고 기대하는 일에 지치기도 했었지만 하반기에는 안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아마도요.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만약을 기대하며 살아왔던 경험처럼 지금도 그러길 바라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아, 그리고 눈썹에 피어싱을 했습니다. 그냥요. 꽤나 자기 파괴적인 행위들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네요.
올해 여름에는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후쿠오카에 가서 생전 처음 느낀 지독한 허리 통증과 장마로 마냥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후회도 조금 했습니다. 그러나 제 선택이었어요. 익숙한 경험으로 돌아가려는 제 지독한 버릇으로 다시 후쿠오카를 선택했는데 새로운 선택이 가끔 답일 때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5월 말부터 7월 말까지는 외출을 하지 못했습니다. 간혹 있는 촬영은 다녀왔지만, 일로 인해 개인적인 외출도 제대로 된 식사도 수면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마침 저 기간 동안 에어컨을 미리 설치하지 못한 관계로 지독한 생활을 하게 되었었네요. 건강과 행복을 모두 잃고 재력도 얻지 못했습니다. 후회만 남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 탓에 건강을 잃고 허리 통증을 앓았던 셈이네요. 회피적인 자기 긍정으로 지나온 대부분의 시간을 긍정하려 하지만 기억에 남는 후회로 잊고 싶은 시간입니다. 나를 위하는 말들에 시야가 좁아진 만큼 화로 채운 가장 못난 시간이었네요.
익숙한 일로 다시 돌아왔지만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새로운 작업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주변 사람들 덕에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인가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시점에 대학 동기들과 갔던 보라카이 밤바다의 대화가 떠오릅니다. 꼭 직업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던 동기 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가 지금은 그 방식으로 빌어먹고 삽니다. 다음 해는 제가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돼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입니다.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한 지 1년 반이 되어가는 내 동생 고양이. 김방울에 대해서요. 착하고 순합니다. 가끔 부르는 이를 무시하고 돌아서기도 하지만 뒷모습에도 마음이 읽히는 순둥이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저에게 늘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묘복도 있었나 봅니다. 어떻게 나의 첫 고양이 동생이 이렇게 착하고 순할까요? 어떻게 나에게 와준 걸까요? 감격스러워서 방울이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자식을 보는 마음이 이런 걸까요? 아이를 낳을 마음이 없으니 평생 비교할 수 없겠지만 감히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야기를 잠시 끊고 다음에 이어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끊은 지 어언 반 년이 지나 다시 이어보겠습니다. 그간 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생일이 5일 남았고 일을 할 때 담배를 태우는 습관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정확히는 현장에 나가 일을 하게 될 때 말이죠. 12월은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일이 많아 제대로 20대를 정리하지 못한 기분이 들어 괜히 만 나이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들기도 하네요. 다음에 한 번 더 20대를 보내기로 하며 날 때의 나이로 다시 변명해보자면, 스케줄이 겹쳐 있어 연말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겨우 넘겼어요.
20대에 배운 게 있다면 10대와 또 달랐던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완전히 달라진 생활 속에서 10대의 내가 배웠던 행동과 생각은 이방인처럼 배회하기 바빴어요. 10대 때 사귀었던 친구들을 만나던 나와 20대가 되어 만난 친구들을 만나는 나의 간극 속에서 혼란스럽던 시기를 지나, 결국 다른 모습일지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련하게도요. 20대 중반을 지나고 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나이에 적응한 듯 해요. 다음 새로울 나이대의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사실이 아득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저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멀티 플레이어로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친 20대를 보내고 난 뒤, 새로운 나이의 초입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해보지 못했던 영화와 드라마에 발을 들여 5개월을 정신없이 보냈어요. 어린 제가 상상했던 어른의 나이에 서있는 저의 모습은 여전히 넉넉하지 못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고 살고 싶어요. 이 답은 10년 뒤에 다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잘 살게요.
여러분이 20대에 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후회하지 않더라도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혹은 20대에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만 나이를 괜시리 핑계 삼아 내년 5월까지 실행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