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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경 Mar 16. 2019

부모님 전상서

사랑하는 부모님 60주년을 기념하며

사랑하는 부모님께,     

나이 쉰이 넘어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습니다.

나이 쉰이 되어 보니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나이 쉰이 되니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대추를 보며 두 분의 인생을 말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그렇습니다. 저희 4남매와 손자 손녀는 두 분의 삶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살며 수많은 된서리도 추운 겨울도 불면의 밤도 많았지만, 두 분의 삶은 영광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께서는 황인용 씨가 사회를 보던 ‘세상 사는 이야기’에 출연한 분들을 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살아온 것은 저것보다 더 고달팠다.’     

그때는 그 의미를 알 듯 말 듯했습니다. 만 6세에 객지에 떼어 놓은 엄마가 야속하면서도  보고 싶어 매일 ‘엄마가 섬 그늘에’를 입에 달고 불러댔습니다.     

공책에 엄마 보고 싶다고 일기 썼다가 누나한테 매를 맞을 때는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대구에 올라오시면 하룻밤만 더 자고 가라 통사정을 했습니다. 어린놈이 돈맛은 알아서 백 원짜리 하나 더 달라고 대구 산격동 실내 체육관까지 졸라 대며 따라다녀 기어코 타냈습니다. 아마 삶에 끈질긴 건 그때 배운 것 같습니다.    

대구 중심가에서 큰돈이 들었던 바나나를 사주며 조금씩 아껴 먹을 때 철없는 아이는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간 군대생활에 아버지가 갈아주시던 야채즙은 어쩌면 저를 지탱하게 한 사랑의 온기였습니다.     

누구에게나 돌이켜 보면 삶의 흔적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두 분의 삶의 흔적은 곳곳에서 우리에게 기억의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두 분의 흔적은 이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저희 4남매와 손자 손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과 결혼하여 60년의 세월을 두 분은 보냈습니다. 엄동설한에 쌀 1말, 그릇 두 벌, 간장 두병을 가지고 삶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결혼반지 팔아 마련한 자전거로 아버지가 선산에서 공검까지 큰 고모가 싸준 계란을 조심스럽게 싸 주실 때 얼마나 고마왔겠습니까? 집에 와서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할 계란이 깨진 것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셨겠습니까? 들기도 힘든 그 술 궤짝을 싣고 깨질까 오줌으로 바지를 적셨을 때 삶이 얼마나 야속했겠습니까? 두 분들은 그때마다 나타나신 여러 지인들의 도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아침에 나누는 대화에서 과자 팔라고 외상으로 준 어느 친척 분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초대하신 분들도 그런 분들이실 겁니다. 저는 감히 두 분을 바라보며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엄혹한 시간에서 지금이 있기까지 얼마나 고난이 많았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이렇게 우리를 우뚝 서게 한 두 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외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산 장작더미로 뗀 방바닥이 어찌 지금 아파트 방 같겠습니까? 푹 꺼진 방 한쪽 구들장에 갓 나은 큰 누나를 뉘어 놓고 행여 천장의 흙이 떨어질까 누나를 감싸 안으면서 얼마나 가슴을 치며 통곡하셨겠습니까?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신 두 분의 삶의 의지로 저는 물질적으로 아무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생각하며 얼마나 제가 밉기도 했겠습니까? 과천 아파트에서 그 좋아하시던 관악산을 오르내리는 추억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훗날 그 사랑의 울타리를 그리워하며 ‘불효자는 웁니다.’는 노래를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살아보니 채움도 중요하지만 비움도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살아 보니 손해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손익계산서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 사랑의 울림이고 우애입니다.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 방안에 불을 다 끄고 두 분의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에 두 분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을 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끝없는 방황을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물 흐르는 대로 살겠습니다.

글을 쓰게 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작가를 평생 할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제 운명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운명이 별안간 나타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텅 빈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것이 ‘습관의 힘’이 되었습니다. 만 6살 꼬마는 어찌 보면 참 눈치를 많이 보았습니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 분의 사랑의 힘을 믿었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큰 누나네의 든든한 희생이 우리 전 가족의 큰 울타리가 되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저희 모두는 두 분의 결혼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두 분의 더 깊은 사랑의 의미를 깨달으며 저희도 베푸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오래오래 두 손 꼭 잡고 뜨는 해 바라보며  행복하게 사세요. 늘 부족한 막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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