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하며 - 나름 만드는 힘
1.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2000년 이후로는 주로 국제 업무에 종사했다. 정부는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제대로 훈련시켜 영어를 사용하는 중요한 협상에 앉혔다.
제노포비아(외국인에 대한 울렁증)는 없을 정도로 나를 만들어줘 겁 없이 ‘서툰 스페인어와 일어’를 가끔 써먹게도 했다. 그런 정부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조직에 있다 보면 적성이고 뭐고 관계없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적성에 맞는 업무를 하면 돈벌이보다 소중한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된다. 30대 초중반, 어느 날, 높은 분이 내게 말했다.
“한글 창제를 세종대왕이 다 했을까? 세종대왕의 공이 다 그 한 분의 힘으로 된 걸까? 큰 그림을 그리고 그에 맞춰 한 배를 탄 모든 팀원들이 노를 함께 저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조직원은 다 한 가지 정도는 잘하는 게 있어. 그걸 끄집어내는 게 중요한 거야.”
극한의 훈련 생활에서 누군가 먼저 용기를 불어넣고 결국에 가서 서로 단합하여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에필로그)
한 목소리가 사이를 뚫고 퍼져 나갔습니다. 노랫소리였습니다.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지만 뜨거움으로 가득 찼죠. 한 목소리는 두 목소리가 되었고, 둘은 셋으로 얼마 후, 모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교관들은 우리에게 협박을 했습니다.
노래를 계속 부르면 진흙 속에 더 오래 가둘 것이라고. 그러나 노래는 계속되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흙이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은 고요해졌고, 해 뜰 시간은 머지않았습니다. 내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의 힘입니다. 바로 한 사람의 힘.
누군가는 이쯤에서 내 안에 있는 나를 제대로 끄집어낼 수 있는 조력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내가 한 분을 만나 어느 정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듯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힘을 발휘하도록 이끌어 준다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22인의 명사와 함께하는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2. 조직에 들어와서 그전까지 나는 무명 씨였다. “자네 이름은 뭔가?”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1996년 장교 제대 후 몇 년을 무명 씨로 보내게 되는데 자존감 하나만은 엄청났다. 1992년 한 분의 과장이 초임 사무관인 내게 말했다.
“Y대를 나와서 재무부에 오다니 고등학교 때 공부 대게 안 했는가 봐?”
‘내가 Y대 다닌 것에 당신이 보태준 게 있나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하등의 부끄러움이 없는데 나에게 당시 Y대를 나온 선배가 말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기는 S대 상대, 법대 아니면 안 알아줘.”
여러 선배들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꺾는 말을 했다. 그들은 S대를 나오고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공직자로서 평생을 새가슴으로 살았어, 나는 여기가 창살 없는 감옥이라 생각했어.”
지위, 학벌, 간판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편중 ‘나를 만드는 힘’에서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는 모두 사업을 위해 다니던 학교를 중퇴한 인물이다.
그들은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하여 학교를 그만두었다. 세상에 그런 리스크 없이 큰 수익을 낼 수 있나! 좋아한다고 다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히 보험이 될 만큼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리스크를 줄여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상황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소위 힘이 있어야 한다. 힘도 없는데 덤비다간 땅바닥에 주저앉기 십상이다.
나는 우울한 시기에도 학벌에 기죽은 적이 단 1초도 없다. Y대 나왔으니 그렇지 하고 말할 사람도 있으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S대를 나온 그룹에서 소수에 속했다고 생각해보라. S대 나온 사람들이 전부 똑똑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단 1초도 없다. 다 그건 허상일 뿐이다.
도무지 삶에 신나는 거라고 없는 시점에서 국제업무를 하는 국에서 소위 히틀러란 별명을 연상시키는 한 공무원이 다가왔다. 내게 구세주 역할을 해 준 분이다. 그분은 세심하게 나의 단점과 장점을 정확히 짚어주셨다(단점은 넌지시). 스마트한 분 밑에서 일하는 기쁨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조직에서 일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노심초사하며 기죽어 있을 때는 ‘걱정 마. 잘 될 거야.’로 내 기우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조직에서 열정을 불사르게 만드는 여러 요인이 있다.
중요한 것은 조직원 한명 한명이 소외받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리도록 만드는 통섭의 리더십이다. 누구나 잘하는 게 있다. ‘그들 안의 숨겨진 장점’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제대로 된 리더십을 겸비할 때 조직은 제대로 순항할 수 있다. 무명 씨에서 벗어나게 한 그분은 좀 친해진 후 이런 말을 했다.
“조팀장(당시 서기관), 너 글 참 잘 쓰더라. 일전에 내가 장관 비서실장 할 때 너 연설문 쓴 것 보고 깜짝 놀랐어. 그래서 너 픽업한 거야.”
처음이었다. 누구는 히틀러라고 하던데, 존경하고 싶은 분이었다. 일을 단순하게 하는 비전(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빌 게이츠 편), 부하를 아우르는 통솔력, 지나칠 정도의 애국심. 그의 열정이 내 열정이 되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내가 행복함에 젖어 있을 어느 해, 그는 정확히 인생의 최대 난관에 부딪혔다.
보직해임을 앞둔 그에게 칼날이 겨누어졌으나 그 칼날은 다행히 다른 이를 향해 갔다. 그의 애국심과 열정을 알기에, 소위 잘 나갔던 그였기에 그의 아픔은 내 아픔으로 다가왔다. 나와 다른 분들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아닌 그분 구하기 작전은 시작되었고 훗날 그는 능력과 인품으로 장관직을 수행했다.
3. 2008년 금융위기... 해외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내게 여러 아픔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투자한 돈은 거의 깡통으로 되었고, 작은 교통사고, 보직에 대한 불안 등이 무겁게 나를 엄습했다. 성당과 산사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찰나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당시 40년을 살면서 내게 다른 이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산사. 일주일간의 ‘잘 듣고 합시다’는 프로그램 마지막 날.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갈겼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말 바닥을 친 것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내 차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보는 시간에는 똑똑히 그들의 말이 들려왔고 마음속을 헤아리게 되었다.
제삼자로서 참가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그들이 진심으로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는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첫날, 자존심 센 나는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순간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분이 잠시만 더 앉아 있다 가라고 통사정을 했다. 여기서 멈춘다면 낙오자라는 것이다.
솔직하게 귀 기울이지 않고 내려놓지 못하면 교육의 효과는 없다는 말과 함께. ‘
잘 듣고 합시다.’는 말은 내 내면과 제대로 된 진정한 조언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 보아야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4. 삶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부터 내겐 보직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던 가치의 승화다. 그게 공직이건 작가건 그 무엇을 하건 중요하지 않다.
내 열정을 불살라 많은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마크 저크버그, 목적이 이끄는 삶의 의미 참조)
그게 앞으로 내 남은 인생에서 나를 사랑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게 변하지 않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힘’인 것이다. 나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과연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누군지 분명히 제대로 알고 있나? 앞으로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이 물음에 대해 아마 평생 고민하고 살 것이다.
인생은 어찌 보면 짧지만 길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고 내용이다. 성공하려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만드는 힘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열정, 삶을 보는 태도, 목적, 소명, 비전이 과연 내게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걸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고자 한다. 더 많은 이와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으로 연결하기 위해 책을 읽어 보며 다시 생각해 본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말이다.
이태석 신부님을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에 갔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그 향기를 생각하며 나 역시 내 안에서 나를 만들어가는 힘을 생각해 본다. 그래야 세파에 안 휘둘리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22인의 명사와 함께 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우리는 다섯 명의 삶의 철학을 마주하게 된다. 후회의 최소화 (제프 베조스), 연결, 사랑과 상실 그리고 죽음(스티브 잡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의미 (마크 저커버그),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소명(일론 머스크),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비전 (빌 게이츠)이 그 이야기다.
5편의 이야기가 다른 목소리로 다가와 이 책을 읽는 독자 한분 한분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자 이제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 보자.
by 조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