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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y 27. 2024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실패하고 얻은 교훈 세 가지

 

  친구의 추천으로 엠마 스톤 주연의 <The Curse>란 시리즈를 보았다. 백인 신혼부부 한 쌍이 미국 뉴멕시코의 유색인종 커뮤니티에 '패시브하우스(직접적 난방설비의 도움 없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선한 공기를 보조적 설비수단으로 거주자가 열적, 공기질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주택)'를 짓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리얼리티쇼를 촬영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는 듯 미소 짓는 얼굴 뒤로 민낯을 철저하게 까발려 보여주는 현실적이지만 꾀나 황당한 블랙 코미디다. 개인적으로 영화 <돈룩업>이나 <아메리칸 픽션>처럼 작금의 세태를 위트 있게 비꼬는 스타일의 작품을 선호하는데 이 드라마는 "와우, 이건 또 뭐야?" 하면서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마도 막연하게 뉴질랜드에서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던 나에게 경종을 울려줬기에 더 확 와닿은 게 아닐까 싶다.


트레이드 미에서 판매한 타우랑가 어딘가의 땅 이미지  (이미지 출처: 트레이드 미)
해당 땅에서 보이는 뷰 (이미지 출처: 트레이드 미)

  

  4년 전 뉴질랜드에 처음 갔을 때 우연히 타우랑가에서 열린 '코하우징 워크숍'에 참석했었다. 단순 관광 여행은 하기 싫어서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찾다가 발견한 워크숍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운명이 아닐까 싶다. 그때 다니던 직장에서 공유 주택을 운영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주거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상태였다. 서울에 살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크숍 강사를 통해 오클랜드 근처의 얼스송 빌리지에 대해 알게 됐고 "바로 이거야!" 라며 친환경적인 주거의 삶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 미래의 삶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먼저 어스송 빌리지 강사가 쓴 책 < Cohousing for Life>를 구입해서 꼼꼼하게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문외한이었지만 맨 땅에서 헤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워크숍에서 만난 건축가인 친구와 함께 트레이드 미에 올라온 타우랑가 인근 지역의 땅을 보러 다녔다. 우리의 조건은 타운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숲이나 나무가 있는 소위 뷰가 좋은, 그럼에도 가격은 적당한 이런 땅이었다. 물론 그런 땅은 드물었고 있어도 가격이 꽤 비쌌다. 몇 번 헛물을 켜다가 지인의 소개로 에코빌리지 커뮤니티에 관심이 있다는 땅 주인과 연결이 됐고 그분의 땅을 방문했다. 가드닝에 진심이셨던 이 분의 땅은 하우스 네 채와 커뮤니티 하우스 한 채 정도가 들어설 수 있는 사이즈였다. 여기에 텃밭 정원과 워크숍(공방)도 추가 가능해 보였다. 그분은 커뮤니티 아이디어에 동의했고 건축가인 친구는 바로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커뮤니티에 조인할 만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홍보는 뉴질랜드의 당근마켓 '트레이드 미'와 페이스북 그룹에 관련 내용을 포스팅하고 지인들을 통해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관심을 보인 사람이 있으면 일대일로 미팅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경기 불황이라 그런지 "현재 있는 집을 팔아야 자금이 준비돼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경우, 집이 언제 팔릴지 기약할 수 없었기에 커뮤니티 멤버로는 적합하지 않아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관심은 크나 돈이 부족한 청년도 있었다. 이런 부류도 제외했다. 커뮤니티는 관심 없고 집만 구매하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당연히 제외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우리도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금도 있고 에코빌리지에 관심 있는 여성 한 분이 커뮤니티 멤버로 조인하게 됐다. 우리는 다시 힘을 내서 홍보를 했다. 한 분 혹은 한 가족만 더 있으면 에코빌리지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스송 빌리지는 14년이 걸렸다는데 우리는 더 작은 규모였기에 이를 충분히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관심을 보인 또 한 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분에게 커뮤니티에 대한 방향성을 자세히 설명했고 함께 답사도 했다. 그분이 긍정적은 태도를 보였기에 우리는 마냥 들떠있었다.


우리가 구축하려고 했던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의 구상도 (Designed by Earth Cube)  © 2024 킨스데이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1년 뒤 결국 엎어졌다. 땅 주인이 마음을 바꿔 땅을 팔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불안했나 보다. 어쩌면 이 땅주인이 에코빌리지 커뮤니티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얻은 교훈은 세 가지이다.


  첫째, 결국 사람이다. 땅주인도, 커뮤니티 구성원도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에 대한 비슷한 열정과 의지로 모두가 같은 페이지 선상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의견을 모아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소수가 리드하는 형태가 아닌 다들 1/N 역할을 해야 커뮤니티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동일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는데 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검증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함께 지내보지 않는 이상 과연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커뮤니티에서는 ‘Right People’이 전부인데 누가 누구를 평가하겠는가. 이 부분은 여전히 쉽지 않다. <The Curse>에서도 패시브 하우스를 구매해서 지역으로 이사 온 외부인이 택배가 자꾸 없어진다고 이웃에게 경고하는 전단지를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차라리 단절과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애초에 그는 커뮤니티에 조인할 의향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더 나은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했던 부부가 “저런 사람에게 우리 집을 팔아선 안 됐어 “라면서 후회한다. 하지만 어떻게 알겠는가. 겪어보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둘째, 커뮤니티에 대한 비전이 명확해야 한다. 초반에 취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화 작업을 했으면 더 나았을까. 그리고 이에 맞는 간단한 동의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받았으면 도움이 됐을까. 우리는 두 명이 주도하고 땅 크기에 맞춰 세 명을 영입하는 구조였는데 그 과정에서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에 대한 정의부터 함께 논의하고 그라운드 룰을 만들어가는 충분한 논의 과정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홍보물에 게시했으므로 그들이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여러 차례 워크숍을 진행해서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충분한 소통을 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을 간과한 것 같다. 여기에 더해서 커뮤니티에 대한 공부를 더하고 경험을 더 많이 했어야 했다. 한국에서 임팩트를 지향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커뮤니티 구축에 대한 경험이 있었지만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는 또 다른 차원의 것임을 깨달았다. 열정과 의지만 가지고 섣불리 덤벼들었던게 아닐까 싶다.  


  셋째,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 구축 자체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초반에 열정만 가지고 시작했을 때는 이게 마라톤이 될 줄 몰랐다.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천천히마음의 여유를 갖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우리도 땅주인도 다른 멤버도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관련 경험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지체되니 열정이 사그라들고 지쳐서 나중에는 홍보에도 소극적이 되고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의구심 마저 들게 되었다. 처음부터 타임 라인을 좀 더 길게 짰다면 땅주인도 1년 뒤 포기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스송 빌리지도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컸지만 14년이 걸렸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싶다. 우리는 달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자만심 때문에 프로젝트가 실패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 이제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는 어떻게 되는가? 이번 경험을 통해 생각이 좀 바뀌었다. EBS의 <숲이그린 집> 프로그램도 보고 여러 케이스들을 살펴보며 처음부터 사람들을 모아 같이 사는 형태가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사는 집에서 그 주변의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나만의 작은 킹덤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커뮤니티에 적합한 사람 일까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갈등이 생겨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나중에 exit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역시나 커뮤니티는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준비를 해서 다시 도전해보고 싶기는 하다. 그런 공동체의 삶이 내 삶과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또 하나의 대안적인 삶이 될 수도 있으려나. 실험은 멈추지 말고 계속되어야 한다.


[자료 문헌]

- https://www.phiko.kr/bbs/board.php?bo_table=z3_01&wr_id=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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