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다섯 가지 극한 실험을 선보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Limitless." 두 번째 "Shock"편에서 호주 출신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가 겨울왕국이 연상되는 노르웨이의 얼어붙은 겨울 바다에서 서핑과 수영을 마친 뒤 추위에 떨며 물기를 닦아냈다. 그러면서 스태프들에게 “타월이 왜 이렇게 작아?”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엥, 작다고? 내가 보기엔 분명히 커다란 베스 타월이 맞는데? 국가별로 타월 사이즈가 다른가?”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해외에서 지내다 보면 학교나 직장에서는 결코 가르쳐주지 않은, 내가 살던 문화권에서는 익숙했던 것을 잠시 제쳐두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아예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기회가 넘쳐난다. 그동안 내 부족한 다양성을 조금 더 확장시키고 포용성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나 할까? 쉽사리 받아들이는 때가 있고 강한 저항성을 느끼는 때도 있다. 쉽게 학습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타월'이다. 브런치를 읽다 보면 서양권에서 생활하시는 분들도 '건식 화장실'과 함께 언급을 자주 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타월이 뭐 어쨌는데?”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뉴질랜드에 와보니 생각보다 타월의 종류가 많다. 그렇다고 누가 대놓고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이 글을 읽는 분도 해외에서 타월로 인해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이참에 한 번 정리해 보겠다.
찾아보니 이렇게나 타월의 종류가 많다. 몰랐다. 서양권에서는 영국이 그 기준을 제시했나 보다. 외국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 화장실에 기본적으로 총 4개의 타월이 비치되어 있다. 작은 타월, 중간 타월, 대형 타월, 발매트 타월 이렇게 구성된다. 사이즈와 재질에 따라 용도가 파악이 되는데 뉴질랜드 가정집도 이와 동일하다. 작은 타월은 영어로는 '워시 클로스(Wash cloth) 혹은 페이스 클로스(Face cloth)'라고 부르는데 번역하면 때수건 혹은 얼굴 닦는 수건이라고 하겠다. 보통 30 cm X 30 cm 사이즈이며 세정제로 거품을 내서 얼굴이나 몸을 닦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이태리타월과 비슷한 기능이다. 대신 면으로 되어 있어서 부드럽긴 하지만 한 번 쓰고 샤워부스에 그대로 걸어두면 세상 흉한 쉰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내 얼굴을 닦는다고? 워낙에 민감성 피부인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 번은 미국인 친구에게 녹색 이태리타월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손에 낄 수도 있고 재질 상 거친 표면으로 인한 스크럽 기능이 뛰어나며 작고 얇으면서 가벼워 세탁, 건조, 보관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뛰어나다고 말했더니 “내가 원하던 거야, "라고 외치며 급 관심을 보였다. 다음 기회에 선물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이 작은 타월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음은 중간 타월인 핸드 타월(Hand Towel)이다. 손 씻고 나서 쓰는 타월이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사이즈는 영국 기준으로 보통 50 cm X 100 cm이지만 우리나라 사이즈는 40 cm X 80 cm 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걸로 손도 닦고 얼굴도 닦고 몸도 닦는 다용도인데 뉴질랜드에서는 손만 닦는다. 작년 겨울 친지 결혼식이 있어 부산의 김해전통체험관에서 3박 4일을 지낸 싱가포르 할머니가 내게 "핸드 타월 2장을 주더라고, " 하시며 농담조로 말씀하셨다. 이것도 전통문화 체험의 일환인가. 불편을 끼쳐 들여 괜히 내가 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들이 당황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핸드 타월'이라고 들었다. 커다란 체구를 이 작디작은 타월 한 장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굳이 상상하지 않더라도 어떤 심정일지 십분 이해가 됐다. 나도 뉴질랜드에서 배스 타월을 쓰다가 한국 집으로 가면 아담한 핸드타월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한다. 특히 물에 젖은 긴 머리를 말리다 보면 "참 작네, 작아, " 란 생각이 들기도 하다. 대신 한 번 쓰고 세탁기로 직행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근데 많이 불편하긴 할 것 같다.
대형 타월. 이게 배스 타월(Bath Towel)이다. 샤워하고 목욕하고 나서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는 데 사용한다. 사이즈는 70cm X 135cm가 일반적이다. 서양인들의 체구와 건식 화장실 스타일에는 배스 타월이 적합하다. 수건 워머기가 있는 집도 있어서 걸어두면 금방 마르니 최대 일주일 가량 사용하고 교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습식 화장실이라 커다란 배스 타월을 사용하고 보관하기가 적합하지 않다.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할 때 배스 타월 2개를 여행가방에 꼭꼭 눌러 담아 가져왔었다. 하지만 부모님 집의 습식 화장실 환경에서는 적합하지 않아 포기하고 서랍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다.
대형 타월보다 더 큰 사이즈로 배스 시트(Bath Sheet)가 있다. 사이즈는 100 cm X 160 cm으로 샤워를 하고 우아하게 몸에 두르고 나오는 게 바로 이 타월이다. 아이들을 씻기고 배스 시트로 감싸줘 방으로 이동할 때 사용하는 게 바로 이 타월인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 있는 집에 게스트로 머물면 울긋불긋한 총천연색의 배스 시트를 제공받기도 한다. 그래서 짐작컨대 앞서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가 원했던 것은 배스 타월이 아니라 배스 시트였던 것 같다.
발을 닦는 발매트 타월은 이 중에서 재질이 제일 두꺼운 편이다. 핸드 타월과 조금 헷갈리는 사이즈일 수 있지만 재질로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샤워나 목욕을 하고 나와 발매트 타월에 서서 발바닥의 물기를 꾹꾹 제거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건식 화장실 바닥에 습기를 차단하는 기능 역할도 한다. 건식 화장실에는 발매트가 화장실 안, 샤워부스 밖이나 욕조 앞에 두고 사용하는 반면, 습식 화장실에서는 화장실 문 앞에 비치한다는 차이점도 있다.
번외로 비치 타월이 있는데 해변가에 깔고 눕는 용도로 쓴다. 사이즈는 122cm to 147cm x 137cm to 177cm 정도이고 재질도 모래와 선크림을 견딜 수 있는 일반 타월 대비 퀄리티가 낮게 제작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사이즈의 타월을 사용하지 않는 걸까? 우리의 타월 역사를 찾아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6.25 전쟁 이후로 타월은 귀한 사치품이어서 결혼식 같은 기념일 답례품으로 사용되었다는 썰이 있다. 그래서 사이즈도 최대집약적으로 통일해서 사용했나 보다. 예전에 부모님 집에서 봄맞이 대청소를 했을 때 쓴 적 없는 새 타월 뭉치 꾸러미가 나온 적이 있다. 1996년도 날짜가 인쇄된 교회 기념일 타월도 섞여 있었다. 이렇게 집집마다 공짜 타월이 쌓여있었기에 돈을 주고 사는 문화가 없었나 보다. 다행인지 지금은 해외 경험이 많아졌고 건식 화장실로 바꾼 집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좋아하는 타월을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타월을 선물로 하는 문화도 이제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어떤 크기의 타월을 쓰느냐는 개인의 취향과 니즈에 달려있다. 그렇다고 내 것, 우리 것을 강요하기보다는 그 개인이 경험한 문화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다면 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비록 나는 워시 클로스를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미리 집에 구비해 두는 것 같은 배려 말이다. 또는 대체할 수 있는 이태리타월을 준비해 이참에 우리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흔하디 흔한 '타월'에도 '다양성'과 '포용성'이 녹아들 수 있구나. 아주 세세한 일상에도 호기심 가득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구나. DEI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이렇게 작게 시작하면 되는구나." 월요일 아침에 브런치를 쓰며 이런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 한 주도 보람차게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