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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Apr 30. 2024

뉴질랜드에서는 비닐봉지가 귀해요


  친구들과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스트레스의 해방구였는데 평일에는 칼퇴 후 실내 클라이밍장에서 연습을 하고 주말이면 경기도 광주에 있는 범굴암이나 원주에 있는 간연암의 자연 암벽을 탔다. 산에 갈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 쓰레기가 곳곳에 참 많다는 점이었다. 물론 산에 온 사람들이 가져가지 않고 그 자리에 버린 흔적들이었다. 오래됐는지 땅속 깊숙이 박혀있는 비닐봉지도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정말 1도 분해되지 않고 몇 백 년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눈으로 직접 보니 실감이 났다. 그래서 자연 암벽을 타러 갈 때마다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벌였다. 인스턴트커피의 포장지 꼭다리며 사탕 껍질이며 담배꽁초며 양심 없는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했지만 조금이라도 깨끗해진 산을 보면 나름 보람을 느꼈다.  


안양 삼성산 BAC 암장에서  <사람과 산> 2014년 12월호 등반 촬영 때 사진 기자님이 쓰레기를 줍는 내 모습도 담아주셨다.  

  

  뉴질랜드에서는 비닐봉지를 공짜로 구하기가 참 어렵다. 슈퍼마켓에서도 비닐봉지는 사라진 지 오래됐고 과일이나 채소를 담을 때 종이봉투를 쓰거나 가져온 장바구니에 그대로 담는 게 일반적이다. 가정집에서는 별도 구매한 쓰레기봉투 외에는 비닐봉지 따위는 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한 번은 라글란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 슬리퍼를 넣을 비닐봉지를 찾다가 없어서 결국 새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가져간 적도 있다. 한국 면세점에서 받은 비닐 백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여행 다닐 때 신발을 넣거나 세탁물을 담는데 요긴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종이봉투로 대체할 수 없는 방수가 필요한 경우나 부피가 작아야 할 때, 혹은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왕왕 발생해서 샐러드 봉지나 당근 봉지를 씻어서 말려 재사용하기도 했다. 어쩌면 너무 편하게 수시로 비닐봉지를 사용했던 한국에서의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여기는 집집마다 비닐봉지가 가득 쌓여있는 한국에서의 라이프 스타일과는 확실히 비교가 될 정도로 달랐다.


  우리나라의 가정집에는 왜 이렇게 비닐봉지가 넘쳐날까? 부모님 댁을 보면 검은 봉지가 참 많았다. 그 출처를 살펴보니 재래시장이 주범이다. 엄마는 재래시장과 이마트, 이마트 에브리데이, 하나로 마트에 카트를 끌고 다니며  두루 장을 보셨다. 재래시장에서는 비닐봉지를 받지 않으려고 해도 "비닐봉지가 영수증이야, "라고 하시면서 검은 봉지에 담아 주셨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망원 시장의 경우, 상인들 중심으로 장바구니를 애용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부모님 동네의 재래시장은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이와 더불어 각종 음식 배달과 비마트 배달로 인해 비닐봉지가 발생했다. 결국 소상공인과 이커머스, 소비자가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비마트도 이마트처럼 종이봉투에 넣어서 배달해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비닐을 열면 또 뽁뽁이 보냉팩으로 2중 포장이 되어있던데. 원가부담이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ESG를 비롯해 배민이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적극 감당하려면 이런 시도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6년 전에 중국 상하이 출장을 갔을 때다.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카페를 주변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점심 때라 회사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동료와 나는 그들이 커피 컵을 들고 있으면 카페 위치를 직접 물어보자고 결심한 뒤 열심히 사람들의 손을 살피며 걸었다. 하지만 일회용 커피잔을 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시재생 호텔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던 커플이 손에 스타벅스 일회용 컵을 들고 있길래 얼른 달려가서 “여기 근처에 스타벅스가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거 촬영 소품인데요.”기운이 빠졌다. 확인해 보니 중국은 일회용 컵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마저 권고 사항으로 뒷걸음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물렁한 환경 정책에 비교했을 때 중국이 앞서간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얼마 전 카톡으로 친구가 힙지로 명물인 '호랑이 커피' 카페에 갔는데 텀블러를 안 가져갔더니 무려 1,500 원이나 더 내서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카페에 앉아 마셨는데도 친구들은 텀블러를 챙겨 와서 3,500 원을 냈고 본인은 5,000 원을 냈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가격 차별이 있어야 효과가 있구나 싶었다. 스타벅스의 300원 할인은 미미한 거였구나 싶었다. 물론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결국 카페 사장님의 강한 의지에 달린 것인가? 이에 공감하는 로열티 강한 고객으로 구성된 팬덤의 파워인가? 한국에 가면 나도 텀블러 들고 호랑이 커피를 방문해야겠다고, 돈쭐(?) 좀 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라에게도 이런 멋진 카페 사장님이 계셔서 다행이다.

카운트 다운 슈퍼마켓에 설치된 비닐 사용백 중단을 알리는 공지 © 2024 킨스데이


  현재 뉴질랜드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는 포장 용기를 모두 종이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다. 2019년부터 일회용 봉투와 비닐 쇼핑백 사용을 금지했고 2022년 10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막대, 폴리스티렌 및 EPS 스티로폼 음식 포장용기와 음료 용기, 육류, 농산물, 빵 포장에 쓰이는 PVC 트레이 및 용기, 분해가능한 플라스틱 제품, 의료용을 제외한 일회용 플라스틱 면봉 사용을 금지시켰다. 2025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을 전면금지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일상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는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기업과 소비자의 공감대 형성과 실천력도 크게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위반하면 벌금이 $100,000 NZD (약 8천만 원)이다. 한국인에게도 인기가 많은 뉴질랜드 "쿠키 타임 초콜릿 쿠키" 봉지를 열어보니 종이 트레이가 나왔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연히 플라스틱 트레이로 되어있을 텐데.

  

  비닐봉지가 귀한 나라에서는 비닐봉지 없이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에 도움이 안 되는 잘못된 습관은 빨리 고치는 게 맞다. 우리나라에도 비닐봉지가 귀해지는 순간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어제 유럽에 서는  ESG 규제가 대거 통과될 예정이라는 뉴스 기사를 접했다. 그들은 앞서나가고 있다. 우리도 나름 선진국으로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아니 적어도 성실히 쫓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그동안 대충 모아둔 종이봉투와 종이백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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