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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Nov 28. 2021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장례를 마치고... 소멸 앞에서 생각한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맥없이 골목을 걸었다. 


토요일 밤의 서교동은 싱그럽고 요란하게 젊다. 찻길가에 새로 지은 건물 지하는 일일 파티 공간으로 바뀌었는지, 둥둥 거리는 비트 음악이 새어 나온다. 코로나19 규제가 조금씩 풀려가던 시기에 도래한 주말, 제각각의 패션 감각을 뽐내며 멋들어지게 치장한 청춘 남녀들이 부산하게 주변을 들락날락 오간다. 어깨동무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담배 연기를 뿜고 하이파이브하고 장난스럽게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


순간 차갑게 식은, 생의 감각이라고는 온통 빠져나간 그의 처량한 육신이 떠올랐다. 음습한 죽음의 방, 앰뷸런스, 장례식장, 입관, 화장터, 묘지.... 지금 여기에 가득한 젊음의 생동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언젠가는 그 역시 저토록 싱그러웠을,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숨 쉬고 말하고 움직이고 인기척을 하던 그의 몸도 이 인근을 걸어 다녔을 것이다. 이제 싸늘하게 시들었다. 나는 마지막도 보지 못한 채, 심지어 하루가 지나 더욱 차갑고 퍼렇게 굳어버린 그의 육신을 나 역시 정신이 반쯤 나간채 어찌할 겨를 없이 맞닥뜨렸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짓눌린 낙엽보다 더 애처롭게 시든 그를 보내며 생각했다. 도대체 생이란 무엇일까. 이토록 허망하게 초라한 행색으로 떠나갈 것을. 고백하건대 나는 그를 좋아했던 시절보다 원망하던 때가 길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어린 시절 보다 생기로웠을 그와 나를 떠올렸다. 누구보다도 자상했던, 존대보다 반말을 좋아했던, 자기 뜻을 고집하지 않았던, ‘나는 할 말이 없다’며 뒤로 물러섰던....


사는 건 무엇일까. 소멸 앞에서 생각한다.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그로 인해 비롯되었다. 그는 내게 어떤 삶을 살아라, 디렉션하지 않았다. 어디로 어떻게 향하고 가야 할지 자그마한 잔상도 남기지 않은 채,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모양새로 그는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날의 단상을 적다가 어떤 흔적, 그가 외장하드에 남긴 메모들을 발견했다. 아마 글이 좀 더 이어질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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