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로컬행... 고흥은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곳
#나
서울에서 사십해를 살고, 불혹 즈음하여 고흥으로 왔다.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생의 층계에서 비틀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겉보기에는 바쁘고 과거보다 쿨해보이고 심지어 더 건강하고 여유 있어 보이기까지 했지만, 나의 내적인 추동은 오히려 젊은 날보다 휘청거리고 불안정하고 한 곳에 모이지 못한 채 갈지자로 흩어졌다.
중년의 위기라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주관과 객관의 영역을 넘나 든다. 객관적으로 잘 살고 별 문제없어 보이더라도 위기일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유가 있기도 없기도 하다. 변화를 꾀하기도 훌훌 털어내는 것도 여의치는 않다. 해본 것, 익숙함, 경험의 축적은 아주 가끔 어른으로의 진화를 이루지만, 꽤 자주 변화를 짓누르고 기성의 진부함을 잉태한다. (그래서 꼰대는 완고하다)
#40+
거울 앞에 서면, 오늘보다 내일 더 주름지고 탄력을 잃어갈 내가 보여 서글프다. 나의 육신은 이 생에서 반환점을 지났다. 코너를 돌았고 종착을 향해 꺾일 날들이겠구나,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서서히 혹은 훅 기울어져가는 나를 마주하겠구나. 비단 보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노래, 낭만에 대하여)
실연의 달콤함이라! 지나간 뒤 미화된 회고일 수 있지만, 분명 청춘은 신비로운 면이 있다. 불안의 파고에 휩쓸리더라도 젊음은 뜨겁고 차갑게 요동친다. 실연도, 감정의 깊숙한 요동도, 뜨거움도, 열정도, 처절한 슬픔도 나의 것인 순간들... 그러나 유한하고 시효가 있다. 열망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고흥
일터(지역자산화협동조합)에서 로컬사업을 준비하고 열심히 해서 성사시킨 계기가 첫 번째지만,
(사회혁신과 로컬활성화를 꾀하는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지역에 닻을 내리고 상주하며 일해야 한다)
고흥행의 이유가 더 떠오른다.
‘평생 도시와 서울에서만 산다? 별로 재미없지 않은가...’
여전히 나에게 모험심이란 게 있었던 걸까. 귀촌을 목적에 두진 않았다. 차라리 노마드적 호기심과 결행에 가깝다. 커뮤니티와 주민(지금 여기), 여행과 나그네(저 머나먼)로서의 삶을 조화로이 엮어서 살길 바라왔다. 고흥행은 익숙한 곳으로부터 떠나는 것이었다. 커뮤니티와 더불어 지역을 대안적으로 일궈가는 도전이다. 두 계기가 맞물리는 다이내믹이 나를 여기로 불렀다.
‘할머니, 그리고 나의 뿌리가 깃든 곳!!’
도시로 도시로 줄줄이 향하던 이촌향도의 시기에 가족들은 상경했고, 바야흐로 지역소멸 위기감이 고조되는 때에 나는 최남단의 땅으로 턴해 돌아왔다. 평생 서울에서 살았지만,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고흥의 말투, 정서, 음식과 함께 컸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고흥은 내적 친밀감이 들었다. "고흥이라면 제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무엇보다 변화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생의 경로와 놓인 자리를 뒤흔들.
서른 살 무렵이다. 지구 건너편 터키 이스탄불을 여행한 적이 있다. 애써 시간 맞춰 동행한 친구들을 먼저 서울로 보내고, 며칠 더 휴가를 내 홀로 머물렀다. 전혀 여행책에 없는, 눈만 간신히 내놓은 엄격한 히잡을 한 ‘찐’ 로컬 여성들이 돌아다니는 낡고 오래된 마을에 들어섰다. 순간, 여기는 공기마저 다름을 느꼈다. 완전히 다른 삶의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내가 택하지 않은 인생 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있지 않던 곳에 놓인 채 맞이한 한없는 낯섦에서 피어오르는 설렘의 감각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새로운 삶, 살아보지 못했던 일상과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먼 곳 아니겠는가! 여행도 멀리 떠나야 여행온 맛이다. 서울과 멀다, 멀다, 멀다... 저 머나먼 곳이야 말로 나의 경험치를 능가하는 미지와 동경의 터다. 거리감만큼이나 생활양식, 문화, 자연환경 모두 같은 하늘아래 차원을 달리한듯한 다른 곳에서 두 번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내게 고흥은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공간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