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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May 10. 2024

차원을 넘어 나로도행

고흥서도 더 남쪽,변방으로... 차라리 이곳에선 단절을 권한다

나로도에 향할 때는 뭐랄까, 미지의 세계, 경계를 넘어서는, 머나먼 땅으로 차원을 건너 들어가는 기분이다.

(남도의 순천, 벌교를 지나 고흥반도의 중앙쯤 되는 고흥읍에 들어와서도 1시간여를 더 남으로 남으로 우주로(정말 길 이름이다) 향해서야 당도할 수 있다)


익숙했던 일상의 바운더리를 넘는다.


닿지 못했던 터로 돌진하는 낯섦, 호기심, 현실감과 멀어지는 희미하고 몽환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한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고흥에서도 저 멀리 더 변방으로 탐험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땅끝과 바다를 잇는 다리 2개(나로1, 2대교)를 건너며 예전에는 배 타고 다니는 섬이었을, 그야말로 최남단에 들어선다. 내가 속해 있지 않은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경계 너머로 향한다. 동떨어짐이 주는 탈주의 묘미를 가득 온몸으로 느낀다. 시원을 감각하게 하는 섬에 덧붙여진 ‘최첨단’ 우주센터가 있는 곳. 고흥의 오늘을 보여주며 곳곳에 보이는 ‘우주로 가는 길’ 표지판도 그런 감정을 증폭한다.

멀리 왔어도, 역시 무엇보다 식후경!


나로2교를 건너 섬 초입에서 멀지 않게 당도하는 나로도항 부근(봉래면소재지). 배 타는 선착장은 물론 수산물 거래가 이뤄지는 수협회센터, 각종 음식점과 편의점, 카페가 보이는 이곳에선 가장 번화한 지역. 식당이 모여있는 곳(삼치회거리)을 걸어가다가 다도해회관에 들어선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함께 간 일행 모두 고흥에서도 멀리 떠나와 이국의 여행지로 들어온 기분인 듯, 낯섦과 설렘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다.


“제대로 먹으려면, 고흥 사람들은 나로도에서 회를 먹죠” (토박이 주민 왈)


자연산 생선만을 취급하는 나로도는 고흥서는 꼭 회 한번 먹으러 올 곳이다. 고흥 9미(味) 중 하나인 나로도 삼치회는 물론이고, 도다리, 돔, 갯장어 등 다양한 청정 수산물이 즐비하다. 게다가 ‘관광지 프리미엄’이 붙은 곳들과 달리, 비싼 가격이라기보다 적당한 가격으로 산지의 싱싱함을 담아 맛볼 수 있다. 푸짐하고 알찬 찬(스끼다시)는 덤~ (여기 고흥은 어디든 가도 찬이 한상 가득이긴 하다)


점심 후, 최남단 섬에서도 남쪽으로 치우쳐서 솟아 있는 봉래산으로 향한다.


끝 모르게 뻗은 망망대해의 수증기를 머금고 수채화같이 펼쳐진 하늘을 보고 있으면, 우선 신비롭다. 산에 올라 능선을 걸을 때마다 광활한 바다의 자태가 파노라믹으로 펼쳐진다. 섬인 데다가 산의 전후방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에, 낮은 산(410m) 임에도 마치 높은 곳에서 바다 한복판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다.


고개를 돌리면 숲과 나무가 무성한 산등성이가 보인다. 빼곡한 편백숲도 저만치에 보이는데(등산코스를 돌아 당도할 곳!), 초록, 연두, 녹색으로 군집을 이뤄 귀엽게 솟은 모습이 동화 속 나무를 보는듯하다. 이곳은 바다뷰, 산뷰, (편백)숲뷰, 다도해뷰를 모두 한데 섞어서 눈앞에 펼쳐놓는구나.

(바다와 육지를 모두 품은 고흥반도는 대부분의 산이 올라가면 다도해, 산, 들을 모두 품은 수려하고 다이내믹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 그리고 이것은 무엇인가.


작열하는 오후의 태양빛이 광활한 바다에 강하게 쏟아져내리며 연출하는 풍경! 어릴 적 만화에서 보던 ‘원기옥’(드래곤볼)이 떠오른다. 거대하고 눈부신 광선과 광량이 드넓은 바다에 부딪히며 내려앉았다. 남해의 망망함과 다도해의 입체감이 어우러지면서, 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빛과 바다, 하늘과 지상이 춤을 추는듯한 조화감, 자연이 시간대에 따라 내비치는 신비로운 풍광…. 단언컨대 인생 최고의 뷰로 꼽을만한 순간이다. 반하고 취해서 산행 중에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봉래산은 자체의 풍모마저 현실과 멀고 묘하다. 저기 육지가 두드러진 곳에서는 보지 못한 남방에 적응한 식생이 흩뿌려져 있다. 사람 손이 잘 묻지 않은 숲, 평소 접하지 못한 남쪽나라의 이국적인 초록, 연둣빛이 사방을 감싼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야생과 오리지널을 접하는 기분. 반복되는 표현이지만 머나먼, 동떨어진, 최남단의 공간이 낳는 이질감, 몽환적으로 흐르는 감각, 경계 너머 인적 없이 쓸쓸하게 놓여 스산한 바람이 불어올 때의 황량함, 자연의 시원마저도 느껴지는 듯 자연만이 두드러진 곳!

(내가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 찾아보니 실제로 이곳은 “소사나무가 가득한 숲길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국내 대표적 희귀 야생화인 복수초(福壽草)의 대규모 자생 군락지가 서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야생화 군락지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어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고흥군 관광안내자료)이라고 한다)


산행 중에 선물처럼 마주하는 나로도 편백숲(고흥8경 중 하나로 꼽히는 곳. 완만한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는 코스도 있다) 또한 원대한 자연에 푹 안겨들어가 있는 기분을 선사한다. 친절하게 가꾸고 조성하여 가족들의 휴양터 같은 ‘팔영산 편백치유의 숲’과는 사뭇 다르다.


이국적이고 원시의 숲을 지나는듯한 봉래산 숲길을 지나,

100년여 역사를 품고(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다고) 20만 평에 걸쳐 굵고 곧게 솟아 있는 당당한 편백나무와 삼나무들. 군락의 규모와 굵기가 정말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땅끝이면서 바다와 만나는 출발점인 교차의 공간에서, 피톤치드를 가득 품은 터에 놓여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이 숲에 들어오면 공기의 감촉이 차원을 달리한다. 산림욕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신비로움, 상쾌함, 그리고 힐링을 함께 흡입하는 순간!


그렇게, 나로도행은 차원을 달리 한 곳으로 넘어가 내가 속한 일상 밖에 덩그러니 놓이는 것이다. 남쪽을 향한 바다, 바람, 태양, 숲과 짙게 교류하며 낯설고 고독하게 나를 미지에 의탁할 뿐, 그렇게 차라리 이곳에선 단절을 권한다. 끝과 막장에 다다라서야, 우주로 향하는 경로와 같이 전혀 상상 못 할 새로운 길이 열릴지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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