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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풍경...
고흥읍 천경자 생가에서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몫에 대해

by 이웃주민

애처롭게 방치된 상실의 흔적을 감각할 뿐이다. 요즘 지역에 살다 보면 흔히 보이는 빈집처럼. 언젠가는, 그 시절 로컬을 넘어 근대성을 발현하며 소위 ‘셀럽’이었을 화가가 살았던 집.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실 소멸은 누구에게나 도래한다. 우리는 잊힐 것이다. 애달프고 중요하게 여겼던 순간마저 희미해지고 결국 보잘것없이 사라질 것이다.


주말, 읍내 집에서 나와 한가로이 동네를 걸었다. 고흥의 옛 지방 관아를 보존해 놓은 존심당을 지나 고흥읍성으로 향하다가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서문리 골목에 들어섰다. 마주친 동네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자 반갑게 맞아주시더니, 몇 마디 하다가 불현듯 “저기, 천경자 화백 생가인데, 한번 가볼랍니까?”


전에도 어떤 기자가 이곳을 서성이고 있길래 만난 적이 있으시다는데, 내가 카메라 메고 돌어다니자 그곳을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셨던 듯. 호오 천경자라. 그저 평범한 동네 길인 줄 알고 걸어 들어왔을 뿐인데 '너가 왜 거기서 나와....' 갑자기 묵직한 예술가의 이름이 호명된다? 그것도 생가라니… 호기심이 확 일었다.



고흥의 딸, 천경자

고흥에 와서 살며 더 흥미롭게 본 책, 그녀의 평전

천경자는 1924년 고흥군 고흥읍 서문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그는 바닷바람과 들꽃 냄새, 그리고 고흥의 강렬한 햇살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자랐다. 훗날 그의 그림에서 폭발적으로 피어오르는 색채와 강렬한 정서의 근원은, 아마 이 남도 바다와 흙의 기운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1940년대 서울로 올라가 예술을 공부하고,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드물게 자신만의 색채와 세계를 구축한 화가였다. 화려한 원색, 꿈결 같은 인물, 그리고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여인들. 그의 그림은 언제나 고독했고, 동시에 생명력으로 들끓었다.

삶과 예술, 고통과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경계 위에서 그는 “여성의 내면”과 “예술가의 자존”을 그렸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곧 ‘천경자풍(風)’이라 불렸다. 누구의 그림과도 닮지 않은, 오직 자신이 만든 길이었다.


그러나 영광 뒤에는 깊은 고통이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린 ‘자화상’을 두고 벌어진 진위 논란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고, 마지막 생을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건 내 그림이 아닙니다.”


그녀의 단호한 부정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일 이후 천경자는 붓을 놓았다. 세상과 멀어져 미국으로 떠나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흥 할머니들은 경계가 없다. 어딘가 인상이 좋았다(?) 싶음 처음 만난 이에게도 경계 너머로 데리고 가서 보여주거나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신다. 천 화백이 살았다는 집의 열쇠를 어딘가에서 꺼내더니(어떤 사연으로 본인이 봐주고 있다고), 해지고 낡고 오래된 집 앞으로 가서 문을 열어주셨다.


정말, 아무런 표지도 흔적도 없었다. 그냥 하고 많은 지역의 빈집처럼 보이는 곳(알고 보니, 천 화백 유족과 고흥군 사이에 안 좋은 사건이 있었다 한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서 독특한 입지를 지닌 커다란 예술가의 흔적을 지역에서 잘 보존하지 못하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살펴볼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DSC03765.jpeg 고흥읍 옥상길 9-1 일대. 천경자 화백이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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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규모는 크지 않고 작은 골목길에 인접한 소탈한 옛 가옥이다. 오래된 한옥이 품은 집의 서까래나 뼈대 자체는 지금도 고풍과 예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풍모를 내비치긴 했지만, 전혀 관리나 정비가 되지 않아 너저분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잡초, 폐나무, 널브러져 있는 가재도구의 잔해를 바라보며,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 아니 에르노, 『세월』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에르노가 노년에 쓴 소설 ‘세월’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명성의 흔적은 흘러가고 초라한 터만 남았음을. 작품과 공간을 일으켜 세움은 원작자의 역할만은 아님을. 그를 만들고 채우는 건 결국 남겨진 이름 없는 사람들의 몫이고 그 보이지 않는 손길에 빚져 우리가 ‘명망가’라 인지하고 있는 이들도 불멸로 각인됨을. 위 소설은 이렇게 끝맺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구하는 것.”


문을 나서며 할머니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건네고 근처에 사는 이웃으로서 다음을 기약하는 손짓을 보내자, 해맑게 웃어 보이 신다. 몇 걸음 걸으니 옆 골목에도, 앞으로도 빈집이 보인다. 흘러가는 망각 속에 기억의 열쇠를 건네준 할머니가 더 자신 있게 이곳에서 ‘잘’ 살았고 사라짐에 대해서도 흔적과 기억을 소환해 소개할 수 있는 동네 주민으로 사셨으면 좋겠다.


ps. 다행히 현재 고흥에서는 지난해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천경자예술길 명예도로명 조성, 최근 진행 중인 천 화백 추모 10주기 리마스터전 등 그녀를 기리는 다양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녀의 예술혼이 탄생한 이 지역이 보다 다채로운 문화의 터전으로 부흥하기를. 그리하여 "모든 장면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있다면. 누군가 불러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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