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보며 눈물이 흐른다는 걸, 처음 경험한다
#1 물 위를 건너 여수 가는 길
바다 위로 난 길을 관통해 여수로 향하는 길. 고흥과 여수 사이 바다에 떠있는 4개의 섬을 5개 다리로 이어 놓은 길인데, 고흥 방면에서의 출발은 1,340m에 달하는 웅장한 팔영대교를 건너면서부터다. 섬과 섬, 다리와 다리, 예전엔 영락없이 배로 이동해야 했을 곳들을 지나가는 것만으로 물 위를 달리는듯한 신비롭고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선사한다. 고흥에서 여수 혹은 여수에서 고흥으로의 이동 중에 차를 타고 건너가면서 다도해와 남해안의 비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멋지네, 와우, 대단….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바다에 내려앉은 햇살을 바라본다. 흡사 대낮에 등장한 별빛처럼 반짝거리며 겨울바다의 스산한 추위를 무너뜨리는 절경.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에 압도될 때, 나는 남해안 ‘윤슬뷰’에 홀려 차를 세웠다.
자연이 선사하는 해독이 아닐까.
내 바깥을 가득 메우고 지배하며 쏟아져 들어오는 어떤 힘, 압도되어 내 안을 채우는 이 자극은 힐링에 가깝다. 콘크리트와 인공조명이 만든 멸균된 도시의 공기 속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찬란함, 형언하기 힘든 사로잡힘과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뭉클함, 그것은 도파민 폭발과 같은 즉각적인 쾌감의 자극과는 전혀 다르다. 자연의 진동이 펼쳐놓는 다채로움이 선사하는 오감으로부터의 쾌청하고 강렬한 자극을 다도해의 입체감 있는 풍광과 더불어 체감한다.
시간과 빛에 따라 색과 형체가 요동침을, 왜 인상파가 나왔는지, 이곳 남도에서는 더욱 분명히 알 것 같다. 같은 바다와 하늘, 같은 들판이라도 날마다 달라지고 어느 하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 빛의 각도와 구름의 결, 바람의 방향에 따라 풍경은 매 순간 다르게 피어난다. 그 다이내믹은 정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생생한 실체였을 것이다. 자연은 단조롭지 않다. 언제나 살아 있고, 늘 변화한다. 인간보다 자연이 우세한 남도에서는 그 모습들을 더 분명히 알 거 같다.
이 자연을 보라!
어떻게 세상의 신비를,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음산한 허무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까.
#2 거금도 다녀오는 길
자연을 보며 눈물이 흐른다는 걸, 처음 경험한다.
물론 살아오며 자연에 감화되고 감탄한 적은 물론 많았지만….
나는 검색하거나 찾아보고 여기에 온 게 아니다. 마실 나왔다가 랜덤하게 간택된 순간일 뿐. 때에 맞춰 그러나 때에 따라 다르게(random) 펼쳐놓는 오직 그때의 풍경에 무아로 압도되고, 섬과 섬을 연결한 다리 위에 달리던 차를 세우고 한참을 바라본다.
읍내 집에 있다가, 확 트인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거금도로 향했다. 고흥에서는 가장 큰 섬이고, 대한민국에서도 열한 번째로 큰 규모의 섬이다. 섬을 따라 한 바퀴 돌며 장대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묵은 짐들이 하나 둘 씻겨나가는 듯하다. 고흥읍에서 녹동항, 소록도를 지나 거금도까지 이어지는 길은 차로 30분이면 닿는다. 남단에서도 남쪽으로 향해 뻗은 익금해수욕장까지 갔다가 다시 거금일주로를 타고 돌아오면서 소록대교를 건널 때,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주황색으로 번진 저무는 태양이 바다에 퍼지며 내려앉고, 해가 기울어가며 하늘도 채도를 바꿔 벌겋게 농익어간다. 구름도 점점 더 붉게 물든다. 마지막 남은 정열을 쏟아놓는 듯 아름답고 애처롭게 투영되는 ‘비포선셋’ 일몰의 색감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앞에서 감정이 무너진다. 나는 여행 온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경이 바로 지척에 펼쳐져 있는 어떤 신비로움, 압도감, 경외... 내가 나타나라고 제어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고 혹은 돈 주고 사들인 것도 아니다. 그저 마실 나와 들른 남도의 커다란 섬에 놓인 순간에, 조건 없이 무상으로 오직 이 시공간에서 선사받은 절경이기에.
간혹 서울이 그립다가도, 그런 생각을 일소시키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