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고흥의 일상적인 맛에서 떠오른 할머니의 부엌
고흥 사람인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아따, 워메, ~해부렀따...' 구수한 남도 사투리와 함께,
그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은 단연 꼬막이다.
전라남도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수산물 중 하나로 꼬막이 꼽히는데(전남 서부는 홍어라고...), 갯벌이 넓게 펼쳐지는 여자만 연안이 최대 생산지다. (여자만은 남도 바다에 걸쳐 있는 고흥, 보성, 순천, 여수에 접하며 아늑하게 둘러져 있는 바다인데, 포근하게 안겨 있는 지형과 어울리듯 꼬막은 정감 넘치고 깊은 토속적인 맛을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고흥의 생산량은 두드러진다. ‘벌교 꼬막’이 유명하지만 실제 걷어올리는 현장, 산지의 역할은 여자만에서도 고흥이 첫 번째다. 전국 꼬막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한다고 하며, 고흥에서 잡힌 꼬막이 인근 벌교로 집하되고 유통되며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라고....
“꼬막은 벌교라고 허는디, 그거 잘못된 게여.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벌교 꼬막을 하도 맛깔나게 해 놔서 그렇제. 원래는 고흥이랑게. 고흥서 난 꼬막 집산지가 벌교인 게지.” 민선 6기 고흥군수 인터뷰 중(헤럴드경제)
할머니는 이촌향도의 발길과 더불어 고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터를 잡고 살면서도, 당연히 고향에서 먹고 자란 맛과 음식에 손길이 많이 갔을 것이다. 시장에 꼬막이 보이면(어릴 적 함께 자주 가던 모래내시장, 한 모퉁이에서 생선과 수산물을 다루던 아주머니와 한 움큼 골라 사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빼놓지 않고 사다가 한솥 삶은 뒤, 양념을 얹어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 아래에서 자란 나로서는 철이면 너무 자주 접하는 음식인지라, 서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먹지는 않는 음식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그날따라 친구 어머님이 꼬막 반찬을 차려두고 외출을 하셨는데, 오늘은 별미를 준비했다고 하시는 걸 두고,
'엥? 나는 솔직히 지겹도록(?) 자주 먹었던 음식인데 이걸 별미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우리 집 말고는 흔히들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생각을 문득 한 기억이 있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분이 품고 있던 많은 것들과 작별을 고하고부터는 확실히 꼬막을 먹는 빈도가 확 줄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일상의 궤적을 바꾼다. 밥상에 차려지던 단골이 사라졌다. 익숙한 음식인지라 어렸을 적에는 ‘지겹다...’ 고도 생각했지만, 그 입맛이 남아있는지 밖에서 꼬막비빔밥 등 꼬막을 다루는 식당이 보일 때면 별미처럼 찾아먹으며 지내기도 했다.
고흥에 내려와 살면서, 나는 다시 꼬막을 일상에서 되찾았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하나둘 시장의 수조 안이 꼬막으로 가득 찬다. 오일장, 재래시장, 마트를 불문하고 바구니에 한가득 담긴 꼬막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식당에선 특별한 메뉴를 고를 것도 없이 백반집 기본 반찬으로 흔하게 꼬막이 나오다 보니, 서울 살 때보다 훨씬 자주 접한다. 눈에 자주 띄니, 사다가 집에서 삶아 먹는 빈도도 잦아졌다. 근처에서 걷어올린 신선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어느 날, 한 식당에 들어가 ‘꼬막장’(껍질을 한쪽만 벗겨내고 양념장을 얹혀놓은 형태)을 먹었다. 껍질을 반쯤 벗긴 꼬막 위에 매콤, 짭짤하면서도 단맛이 섞인 양념장이 얹힌 반찬이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그대로 떠올라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음식은 기억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 잊고 있던 존재와 함께한 시공간의 세세한 질감을 음식이 먼저 불러주는 날, 삶은 루틴처럼 이어지지만 때로는 한 접시의 맛이 모든 과거를 한꺼번에 데려온다. 어떤 재료에 담긴 맛은 하나의 시절이고, 하나의 사람이다.
오래된 연립주택 주방에 서서 꼬막을 대야에 담가 달그락달그락 물에 헹궈내시던 모습, 솥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게끔 삶아 껍질 한쪽을 먹기 좋게 떼어내던 모습, 갓 삶은 꼬막을 몇 개 같이 집어 먹고는 맛깔난 양념장을 얹혀 며칠 먹을 반찬을 해주던 모습, 깊은 손맛을 내는 양념장에 밥을 같이 비벼먹기도 한 그 시절....
나는 고흥에서 살며 지금껏 나를 존재하게 한 무언의 연결을 느낀다. 나의 삶을 만든 흔적들. 이 터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로부터, 인심 좋은 사람을 닮은 온화하고 풍요로운 터전에서부터, 여기서 키워내고 손수 만들어 나의 입맛에까지 이어진 남도의 음식들로부터, 나에게로 향했던 따뜻했던 손길을 상기하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