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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Apr 06. 2024

첫 단독 저서 출간에 부쳐

《핑커 씨, 사실인가요?》 작업에 대한 소회

 

 브런치에 처음 썼던 글들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제목은 "핑커 씨, 사실인가요?".

 오늘 교보문고 오프라인 서점에 입고된 것도 확인하니 또 기분이 새삼스럽다.


 《팩트풀니스》, 그리고 스티븐 핑커가 유포해온 담론들과 씨름해온 결과가 어쨌든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극빈율 데이터와 관련한 논쟁들을 팔로업하며 여러 논문들을 탐독하고 데이터를 직접 탐색해가며 얻은 결과를 브런치에 글로 풀어 써보자고 결심한 일이 결국 이렇게 좋은 결실로 돌아와 뿌듯하다.

 평소 존경하던 홍기빈 선생님, 정희진 선생님 두 분의 추천사를 얻게 된 것도, 강양구 기자님이 해제를 써주신 일도, 모두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래는 애초 《핑커 씨, 사실인가요?》의 저자의 말로 썼던 글이다. 실제 출판된 책에는 분량의 이유로 상당부분이 편집됐지만, 작업에 대한 소회와 함께 여기 남겨둔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7581111&memberNo=29538049&navigationType=push




 내가 《팩트풀니스》, 《지금 다시 계몽》 등에 나오는 수많은 통계들과 씨름하게 된 건 아마 2018년 가을 즈음이었을 것이다. <사회통계학>을 수강하던 대학생이었던 내게, 이 강의의 교보재로 쓰였던 한스 로슬링의 테드 강연은 꽤나 인상적으로 남았다. 가난하고 단명했던 개발도상국들의 국민들이 지난 수십 년 간 눈부시게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더 오래 잘 살게 되어온 과정을 단 몇 십초 안에 그 이상으로 탁월하게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느낌은, 2019년 3월 그의 테드 강연들의 내용을 고스란히 반영한 그의 역작 《팩트풀니스》가 한국어로 역간됨으로써 많은 한국 독자들도 공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스 로슬링이 역설해보인 세계의 발전상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어떤 불편함을 갖게 했다.

 여느 인문·사회과학도들처럼 비판적 사회과학 담론의 세례를 받은 내게, 그 불편함의 정체는 금방 뚜렷해졌다. 스티븐 핑커는 내가 어렴풋이 감지한 이 통계들의 함축적 의미를 정확히 콕 집어 사회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운위해온 ‘지식인’들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그의 입장은, 자신이 인용한 통계들의 객관성에 대한 기본적 신뢰로 무장한 그에게는 얼마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내놓은 통계들이 펼쳐 보이는 올곧은 일직선의 발전상에서는, 비판적 사회과학이 다뤄온 제국주의와 수탈, 착취 등으로 점철된 수난의 정치사를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사회 발전의 지표들에 대한 내 관심은 여기서 시작됐다. 핑커와 로슬링이 펼쳐보인 통계들이 맞다면, 도대체 ‘지식인’들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왜 세상에 대해 이다지도 착각해왔단 말인가? 그들이 정말 틀렸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틀렸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인문·사회과학도로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다시 계몽》의 스티븐 핑커와 《팩트풀니스》의 한스 로슬링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연구 논문과 저서들을 섭렵하는 것이었다. 대학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이런 내 작업은 자연스레, 이들 논문들이 이용한 데이터를 직접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이 이야기가 단지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슬링이나 핑커의 명시적 주장 혹은 그 행간에 숨겨진 몇 가지 문제적 암시를 들춰내는 데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됐다. 단편적인 토막 사실의 진위 여부보다도 그 함축적 의미를 생성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심급은, 그것을 발굴하고 배치하는 사회적 실천의 층위에 있음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나는 한스 로슬링이나 스티븐 핑커가 “틀렸다”고 평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하면, 그들의 주장을 문제적으로 만드는 이 ‘사회적 실천’의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구조를 ‘구성성’, ‘관련성’, ‘가치성’이라는 말들로 개념화했다. 그럼으로써, 이들의 주장으로부터 내가 느낀 불편함은, 공공 의제에 관한 대중 담론에서 이른바 ‘팩트’가 사용되고 이해되는 양상 일반에 대한 문제의식에 가닿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가진 가장 구체적인 얘깃거리들로부터, 사회에 던질 수 있는 일반적인 메시지를 길어 올리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그저 스티븐 핑커와 한스 로슬링(더 나아가 셸렌버거)에 대한 책은 아니게 되었다. 그보다는, ‘팩트’에 연계된 온갖 맥락들을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자 한다.

 이 작업은 내 20대의 전반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축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로 스터디를 진행하는가 하면, 뜻밖의 계기로 내 작업의 주요한 레퍼런스가 되어준 세계적 석학인 리처드 이스털린을 직접 서면으로 인터뷰하여 인터뷰 기사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 모든 내용을 이 책에 조금씩 녹여냈다.

《팩트풀니스》를 인간의 인지 체계에 뿌리 박힌 심리적 편향을 깨우쳐주는 책으로 읽는다면, 이만큼 재미있게 잘 쓰인 유익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서두에서 밝혔듯, 이 책에서 선보인 작업들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팩트’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의문에 붙이고자 하는 책에서, 이 편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고로, 이 책의 모든 내용 역시 확증 편향·비확증 편향 등에서 비롯된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미리 일러둔다. 다만, 누구든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이 책에 쓰인 분석에 사용된 거의 모든 코드를 공개한다. 틀리더라도, 최소한 반증 가능하게 틀리기 위한 일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내 지적 여정을 함께 경험해 주시기를, 더 나아가, 거기서 나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통찰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에 사용된 분석 코드를 확인할 수 있는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s://github.com/neinlee/factfulfake 


 모든 분석은 R로 수행했다.

 R이 설치되어 있다면, i) 코드 파일에 주석으로 삽입되어 있는 링크를 타고 들어가 데이터셋을 다운받은 뒤, ii)코드를 연 폴더와 똑같은 폴더에 저장하고 iii)코드를 실행하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그래프들과 분석 결과를 재현할 수 있다.

 추후 README 파일도 업데이트하고, 코드 파일에도 주석 등을 추가하면서 가독성을 높여 정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 발견되는 책 본문의 오류도 여기 정리해둘 것이다.

솔직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코드까지 리뷰를 해줄까 싶긴 하지만.




  책의 기초가   브런치북 <팩트풀 페이크> <팩트라는 착각>에는 없지만 《핑커 , 사실인가요?》에는  챕터로 수록된 내용에 대해서도 짧게 부연하고 싶다. 마이클 셸렌버거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하 '착각')》에 대한 내용이다.  책에 대한 비평을 6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무엇을 착각했나 -환경  생태-' 실었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7479380&memberNo=29538049&navigationType=push


 팩트의 '구성성', '관련성', '가치성'을 조명하는 내 책의 큰 개념적 틀 안에, 그간 기후과학자들이 마이클 셸렌버거가 유포해온 주장들에 대해 수행한 팩트체크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 이 6장의 몸통이다.

 이전 장들과는 달리 기후과학은 전혀 내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내 관점과 주장을 개진하기보다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가진 기후과학자들의 비판을, 저 개념적 틀 안에 옮겨와 소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만, 여기에 셸렌버거가 제기해온 담론들에 대해 다소간 동의, 공감하는 바에 대하여는 내 짧은 의견을 아주 소심하게 덧붙이는 정도였다. 2030년이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 멸망을 저지할 마지노선이라는 식의 '기후 종말론'이 기후과학의 합의인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적어도 알량한 내 지식의 범위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점을 지적하는 부분도 이 내용에 담고 싶었다.

 셸렌버거의 《착각》이 아주 대중적으로 히트를 친 것은, 그런 오해를 콕 찝어 비판하며, 진실을 멋지게 폭로해내는 스탠스를 아주 잘 연출한 것도 큰 몫을 한다. 애초에 원제가 Apocalypse Never, 즉 "종말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내용 아니던가. 근데, 그런 '진실'에 교묘하게 현재의 기후과학이 상당 부분 합의한 바에 대한 오해를 유도하는 내용들을 섞으며,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오해를 만드는 데 기여함으로써, 《착각》은 문제작이 되고야 말았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공포에 빠진 대중이 가진 오해를 견제하겠노라며, 《착각》류의 담론들이 그 반대편 극단으로 달려감으로써 또 하나의 오해를 형성하는 형국 속에서, 중용을 지키는 기후 담론을 누군가는 보여주었어야 했다. 아쉽게도, 《착각》의 선풍적인 인기에 비해, 그 내용의 오류에 대해 조목조목 분석하는 본격적인 비판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실정이었다. 그 역할을 《핑커 씨, 사실인가요?》가 부족하나마 하고 있다.

 물론, '중용'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과소 평가하게  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근 AMOC(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 붕괴를 두고 기후 논의의 한복판에서 오가는 얘기들을 보다보면, 급변적인 기후변화의 위험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성큼 다가와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후과학은 전혀  분야가 아니므로,  이상 여기에 대해 판단할 만한 지식이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부분은 내게도 앞으로의 숙제로 남겨진 영역이 되었다.




 어찌 되었건 책 출간 작업은 끝을 냈지만, 이 책에 담긴 주제들에 대한 탐구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앞으로도 브런치에 조금씩 공유할 생각이다.

 부디, 《핑커 씨, 사실인가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렇다 할 이력도 없는 저자의, 쉽지 않은 학술적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해주신 '어떤책' 출판사와, 편집의 전과정을 함께 고생해주신 편집자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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