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

손글씨 필사본

by 오현지


[ � 악에 대하여 - 에리히 프롬 �]

손글씨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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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와 회개 �>


<구약성서>에 쓰인 히브리어'하타(charah'는 흔히 '죄'라는 뜻으로 번역되지만

사실은 '길을 잃고 헤매다'라는 뜻이다.

즉 '죄'나 '죄인'이라는 말이 갖는 비난하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회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테슈바(Teschubah)'인데,

이는 (신으로, 자기로, 올바른 길로) '돌아가다'라는 뜻이지,

자신을 꾸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하여 <탈무드>에서는 '돌아오기의 명수(뉘우친 죄인)'이라는 표현이 쓰이며,

그가 죄를 지은 적 없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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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선을 선택할 자유* �️ ]


(결정론과 비결정론이 관여하는) '선택의 자유'란

더 나쁜 것이 아닌 '더 좋은 것(better)'을 선택하는 자유이고

(더 좋고 나쁘고는 늘 인생의 기본적인 도덕 문제와 관련해서 이해된다.)

전진이냐 퇴행이냐, 사랑이냐 증오냐, 독립이냐 의존이냐 하는 것이다.


구원 또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이론을 정확하게 알고 동시에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행동하고 싸우지 않으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 예언자 �>

예언자는 미리 알리는 자 (Voraussager) 가 아니라,

분명하게 알리는 자 (Aussager) 이다.

또는 진실을 알리는 자 (Wahrsager) 하고 해도 좋다.



※ 예언자의 경고 - 몰락할 것이냐, 아니면 국가의 우상화를 근절할 것이냐.



<⚠️ 예언자의 제 3의 기능 ⚠️>


그들은 (예언자들은) 항의자이다.

그들은 선택을 제시하는 것 만이 아니다.

그들은 몰락으로 이끌 가능성을 적극 경고하며, 그 가능성에 대해 항의한다.


하.지.만 알리고 항의한 다음엔 사람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신도 개입하지 않는다.


기적을 행하지도 않는다.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예언자가 도움을 주는 것은 오로지 선택을 제시하고,

불행에 이르는 결정으로 주의를 끈다는 의미에서 만이다.



<� 우상 �>


우상은 인간의 작품이다.

신도 우상처럼 인간의 작품으로서 추앙받는다면 우상이 된다.


우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는(숭배자는) 가난해진다.

그리고 완전한 빈곤화를 피하려면 우상의 노예가 됨으로써 우상에 절하여

자신의 내면적 풍요의 일부를 되찾아야 한다.


근대 철학의 용어에서는

바로 이런 현상을 '소외'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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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아의 시대 ✝️>


예언자들에게 메시아의 시대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연과도 싸우지 않고,


소유욕도 시기도 없이,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라는 것 뿐만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목적과 목표를 획득하는 시대로서의 특징이 있다.



<�️ 이성 �️>


이성의 원천은 합리적인 사고와 감정의 융합이다.

이 두 개의 기능이 분열하면

'사고'는 조현병을 닮은 지적 활동으로,

'감정'은 생명에도 위해를 끼치는 신경증을 닮은 정념(情念)으로 떨어져 버린다.


*정념 (情念) :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



생명없는 것에 이끌리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구조보다는 '법과 질서'를 좋아하고, 자발적 방법보다는 관료적 방법을,

생물보다는 물건을, 독창보다는 반복을, 풍요보다는 통합을,

쓰는 것보다는 쌓아두는 것을 좋아한다.



'가벼운 정도의 정신병'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것에 몇 백만이나 되는 사람이 걸린 채로 (바로 그것이 어떤 문턱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기능을 평범하게 수행하고 있다.





= 마음과 정신이 유래한 '생명이 있는 상태'를

사회에 부적응한 것으로 오해하고 잃어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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