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뜻밖의 꽃다발을 들고 들어와 열어준 하루의 이야기
아들이 꽃다발 두 개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여는 순간 퍼져 나오는 그윽한 꽃향기 때문일까, 집안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꽃을 들고 들어오는 모습이 흔치 않아 자연스럽게 아들의 손과 표정을 번갈아 바라보게 되었다.
아들은 꽃다발 하나를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행동에 잠시 놀란 듯하더니, 얼떨결에 꽃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들고 온 또 하나의 꽃다발은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꽃은 집에 갈 때 가져갈 것이라고 했다.
아들은 며느리가 친구 집에 있어 집으로 데려오는 길이었다. 마침 할머니 묘소가 가까운 장소에 있어 잠시 들리게 되었다고 했다. 공원묘지 규정상 겨울철에는 조화만 허용되지만, 아들은 규정과는 상관없이 생화를 사서 묘소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이기도 하고 야외에 있는 납골 묘소이기에 생화를 두고 올 수 없어, 헌화한 뒤 다시 가지고 왔다고 한다.
꽃을 사면서 덤으로 아내에게 줄 꽃도 함께 샀고, 집에 가져가려고 식탁 위에 올려놓은 꽃은 장모님께 헌화했다가 가져온 그 꽃이라고 했다.
'근처라서 들렀다’고 쉽게 말했지만, 사실 근처라는 말이 늘 같은 의미는 아니다. 그냥 지나쳐도 아무도 모르는 길이다. 그런데도 아들은 몇 주 전에도, 그 이전에도 생각날 때마다 아들은 종종 할머니의 묘소를 찾았다고 한다.
갑자기 아들의 마음에 아버지의 존재감도 궁금했다.
“아빠가 죽어도 묘소에 그렇게 찾아줄 거야?”
아들은 왜 그런 말을 하냐며 정색을 한다. 사실은 그런 정색하는 말을 은근히 듣고 싶었던 내가 우스웠다. 나이가 들수록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자식들에게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언제부턴가 생겨났다. 그런 내 행동을 보면서 늙어가면서 아이가 된다는 말이 실감 났다.
갑자기 ‘사람은 살아 있을 때 마음의 흔적, 곧 그리움을 남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움은 억지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서로 어떤 마음을 나눴는지, 어떻게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쌓여간다.
무엇이든 거저 생기는 법은 없는 것 같다. 장모님은 손주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건네던 분이었다. 손주의 고민을 세심히 들어주고, 마음속 이야기를 헤아려주던 따뜻한 어른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주들에게 장모님은 단순한 ‘할머니’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을 품어준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아들의 보여준 오늘 행동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과연 돌아가신 장모님처럼 자식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부모가 될까?’
‘언젠가 손주가 생긴다면, 그 아이는 할아버지를 어떤 마음으로 떠올릴까?’
60대가 되면 귀가 순해지고, 어떤 말이든 편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인생의 치열한 경쟁에서 조금 비켜서니, 주변 감정과 사소한 일상의 파동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일까. 오늘 아들의 행동 하나에도 마음의 문이 열리고,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 아들이 가져온 꽃다발 하나가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사랑하는 이의 빈자리를 떠올리고 기억하기 위해 멈춘 마음, 그 마음이 집 안에 오래 머무는 듯한 시간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찾아가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결국 삶이 남기는 가장 깊은 의미가 아닐까. 오늘 그런 생각을 안고 하루를 마무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