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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엠디 Jun 20. 2024

백수지만 나의 불안이를 안아주고 싶다(인사이드아웃2)

인서울,대기업,결혼 따위가 당신이 될 수는 없다. 

범생이로 학창생활을 보내다 인서울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9년 회사 생활을 하다 남편이 회사 스폰으로 미국 MBA에 가게 되자 같이 가려고 퇴사하고 2년 미국살이를 준비하는 백수. 꽤나 고연봉자에서 이젠 매달 25일이 되어도 입출금 문자 내역이 잠잠한, 통장이 주린 배를 움켜쥔 연봉 0원으로.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한 30년 넘는 인생은 위와 같이 겨우 두 줄로 요약되네요.



9월 미국 입국을 앞두고, 어느덧 퇴사한 지 두 달째입니다. 저, 요즘 몹시 불안합니다.

퇴사자의 현실이랄까요. 회사를 가지 않으면 시간에 대단한 알았는데, 현실은 미친듯이 게을러지더라고요. 오전 8-9시 넘어 느지막히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면서도 문득 이래도 되나, 머리가 굳어버리면 어쩌지 불안감이 저를 덮치는 시기입니다. 그러고나서 밥 먹으면 냅다 소파에 다시 누워버립니다. 인스타 쇼츠부터 넷플릭스까지, 그야말로 범람하는 도파민의 시대입니다. 시간 떼울 수 있는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요! 


이제는 입금 알림없는 가난한 통장을 쥐고 있다보니 작은 소비에도 민감합니다. 나가지 않으면 돈을 잘 쓰지 않으니 커피값 정도 제외하고 소비도 많이 줄었습니다. 신한카드에서 몇 번이고 전화가 왔더군요. 고객님 카드 사용에 문제 있으시냐,라고요. 그저 웃음이 나더라고요. 


요즘은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면 힘든 부분들이 많습니다. 

"와, 남편 따라 미국가신다고요? **님은 거기서 뭐하세요? 같이 공부하세요?(지인들이, 또는 친구들이)"

"너는 거기 가서 뭐할거니? 경력단절은 안된다. 가서 뭐라도 해야지 (엄마가)"

"잘됐네. 가서 뭐해, 놀면서 애기나 낳고 와! (일부 어른들이)"

"나라면 가서 유튜브한다(친구들이)"

심지어 몇 주 전에 미국에서 렌트할 집을 보러 갔을 때, 부동산 realtor들 마저 당연히 저도 학생이냐고 해맑게 묻더라고요.  



"음..아니요. 아직 미래에 뭘 해야할 지 생각은 못했어요. 좀 쉬려고요"

아무도 뭐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말할때마다 작아지는 제 마음을 저도 어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모른다는 것은 저에게 몹시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해맑게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불안이 


그러다가 인사이드아웃2를 보고, 불안이 덕에 많은 위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저의 인생은 많은 순간 불안이 덕에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행복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기도 했었지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갈 수 없어"

"열심히 취업준비하지 않으면 직업을 얻을 수 없어"

"열심히 저축하지 않으면 서울 안에 발 디딜 방 한 칸 얻기 힘들걸"

"네가 결혼할 생각이 있다면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야해"


불안이는 끊임없이 저의 인생을 흐르게 도와준 친구일 겁니다. 

저는 꿈도 크게 없었습니다. 왠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라고 하면 그게 예체능과 같은 예술 분야이거나 전문직이거나 몹시 거창해야할 것 같은데 저는 그저 평범했거든요.그저 남들처럼, 또는 남들보다는 잘 살고 싶다 라는 욕망이 저의 불안이였나봅니다. 


하지만 퇴사하고 쉬고 있는 지금, 크게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볼까요. 


범생이로 학창생활을 보내다 인서울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9년 회사 생활을 하다 남편이 회사 스폰으로 미국 MBA에 가게 되자 같이 가려고 퇴사하고 2년 미국살이를 준비하는 백수. 꽤나 고연봉자에서 이젠 매달 25일이 되어도 입출금 문자 내역이 잠잠한, 통장이 주린 배를 움켜쥔 연봉 0원으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예전과 다르게 자꾸만 구구절절히 제 자신을 인서울, 대기업 출신 등으로 길게 포장해서 말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이미 지나가버린 수식어들에 대해 불안감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인서울도 대기업도 그런 수식어들이 네 자신이 될 순 없어, 라고 저의 불안이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울퉁불퉁 예쁘지는 않지만 힘겹고 서투르게 꽃피운 저의 자아에게 힘껏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주말에도 트렌드 스터디를 열심히 했던 2019년의 나,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회사원 장엠디. 


퇴사하고나서, 그 어느때보다 당당하게 " 저 지금 뭐하고 싶은지 찾으면서 그냥 쉬고 있어요!" 라고 얘기하고 싶은 요즘입니다. 인사이드아웃2를 한 번 더 볼까도 고민중입니다. 


불안이는 잠시 쉴 수 있게 내려두고, 앞으로 살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경제적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리하는 6월을 보내보려고 합니다. 




구독자님들은 어떠신가요? 지나가다라도 제 부족한 글을 읽게 된 모든 구독자님들의 불안이를 

대신 뜨겁게 안아드리면서 (저는 시간이 많으니까) 이번 글을 끝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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