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울어준 날

몸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기억한다

by 고요숨결


나는 오랫동안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왔다.

힘들다는 말을 아꼈고,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지내왔다. 불편함은 쉽게 참고 넘겼다.

생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몸은 달랐다.

작은 일에도 쉽게 긴장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몸이 피곤해지면 소화불량과 두통이 함께 찾아왔고, 일상 속 활기는 점점 옅어졌다.

잦은 수술로 몸은 점점 더 약해져 갔다.


올 초 가까운 지인의 추천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 움직임을 배우기 시작했다.


몇 개월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떨림이 지나간 뒤, 참고 있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마치 오래 막혀 있던 곳이 풀리듯

몸은 서서히 편안함과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40대 초반부터 이어진 잦은 수술도 있었지만, 내 몸에는 출산의 기억이 가장 깊게 남아 있었다. 첫 아이를 낳은 뒤 생사를 오가는 시간을 겪었고, 그 경험은 병원에 대한 극심한 긴장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반복된 크고 작은 수술들은

그 긴장을 더 단단히 쌓아 올렸다.


나는 움직임을 통해 내 몸에 남아 있던 오랜 긴장과 스트레스를 조금씩 풀어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감정을 지나간 일처럼 처리한다.

말로 설명했고, 이해했고,

정리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몸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근육과 호흡, 긴장 속에 남겨둔다.


떨림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이 선택한

아주 오래된 회복의 방식이었다.

동물들이 위협이 지나간 뒤 몸을 떠는 것처럼

나의 몸도 이제야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 것뿐이었다.


나는 그날의 떨림을 생생히 기억한다.

멈추려 하지 않았고, 억지로 조절하지도,

의미를 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몸이 스스로 마칠 시간을 허락했다.

신기하게도 떨림이 지나간 뒤

마음이 먼저 조용해졌다.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몸의 긴장이

풀리자 생각도 함께 느슨해진 것이었다.

이런 움직임을 TRE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다시 안전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종종 마음을 다독이려 애쓴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몸이 먼저 울어주어야

마음이 비로소 숨을 쉰다.

이 글은 치유를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내가 내 몸의 언어를

처음으로 존중했던 날의 기록이다.


어쩌면 회복은 무언가를 더 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을

멈추지 않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TRE(Tension & Trauma Releasing Exercises)


몸에 저장된 긴장과 스트레스를 스스로 풀어내도록 돕는 신체 기반 접근법입니다. 특정한 간단한 동작을 통해 근육을 부드럽게 피로시키면 몸 안에 유전적으로 인코딩된 자발적 떨림 메커니즘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됩니다. 이 떨림은 뇌의 의도적 조절이 아니라 신경계의 안전 신호에 의해 일어납니다. 몸은 떨림을 통해 과도한 각성 상태에서 벗어나 균형을 회복하려 합니다.
TRE의 핵심은 억지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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