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잠들기 전에
쇼파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지분은 굳이 측정 도구에 넣어서 재보자면
내가 7할 이상은 가져가는 것 같다. 허허
남편은 연애 때보다 다소 말수가 많아진 것 같다.
연애시절에는 그가 자고 있거나 졸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는 관심사를 이야기하거나 무척 재밌거나
많이 화가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 말에 적극적인 리액션은 없었다.
그런데 뭔가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아빠 같아서 그 모습이 오히려 좋기도 했었다.
실제로 결혼 후에 둘은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꽤나 비슷하다.
결혼 후에 억지로 찾아내려는 것도 끼워맞춘 것도 아닌데 남편의 앞모습을 통해
아빠의 뒷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신기했다.
"아 이런 날은 아빠가 정말 많이 속상한 날이었구나.
아 어떤 날은 아빠가 엄청 좋은 일이 있으셨었구나."하고 말이다.
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남편의 두 발을 꼼꼼하게 닦아주고 주물러준다.
사실 발을 닦아주기 시작한 계기는 이랬던 것 같다.
남편은 물류일을 한지 어느덧 3년 차인데,
결혼 전 혼인신고를 먼저 했어서 미리 같이 살기 시작한 어느 날,
별생각 없이 남편의 발을 쳐다봤는데
발바닥이 빨갛게 익은 것을 느꼈었다. 발을 씻겨주고 싶었다.
무의식적으로 레몬향이 나는 비누를 챙겨 잘 닦아준 다음
부드러운 크림을 발라서 뽀송뽀송하게 마무리 해주기 시작했다.
남편은 좀 민망해하는데 나는 정말 괜찮다. 그 두 발로 이리뛰고 저리뛰고
이 사람한테 치이고 저 사람한테 치이고, 많은 업무를 해내는 것을 짐작해보면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 아빠 역시 채소 도매 일을 인생의 절반이 넘게 해오신 분이라
결혼해서 나와살기 전에는 집에 있을 때는 가끔 두 발과 다리를 주물러 드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많이 아빠의 피로를 풀어드릴 걸 하고 후회가 된다.
갑자기 내가 세숫대야를 들고 이리저리 적은 소음을 내며
움직임을 보일때면 남편은 그만 쉬라고 탄식을 한다.
그러나 결국 내 황소보다 더 센 황금소의 고집을 못 이기고
두 발을 쇼파 밑으로 빼꼼 내밀어 준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어제는 그가 뭔가 잠시 촉촉한 눈으로 회상에 잠기더니 조용히 혼자 말을 했다.
"진짜 하지마. 장모님이 이러고 있는거 아시면 속상해하셔
그러라고 본인 딸 시집 보내신게 아닌데..."
나는 웃으면서 발을 닦아주며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오히려 내가 공주대접만 받는 걸 더 속상해 할 사람인데...
아빠라면 아마 내심 좀 뭉클해하거나 말이 없지 않을까 싶어~ 호호"
실제로 어제 오전에 잠시 들른 친정집에서도 엄마는
내가 남편에게 혹여 잔소리를 하거나 이해해주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바가지를 긁을까 꽤나 걱정하는 눈치였다.
절대 그럴일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나를 보며
엄마는 티비에서 나이가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연예인 연상연하부부를 보면서 네 살 연하 남편과 사는 내가 떠올랐다며
혹시 몰라 걱정에 이야기 해본 거라고 했다. 엄마도 참................
살아온 인생이 다르니 어지간하면 이해를 하고, 양보를 하며 지내도록 하라고 했다.
물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가 외출하시면서 선풍기와 티비 전원을 안 끄고 나갔다면서
속이 터진다고 말한 것에 그 감흥이 조금 깨졌지만 뭐 엄마니까.
아직도 언니와는 다르게 나는 일곱 살에 머물러 있다고 늘 말하는
우리 엄마다운 멘트라고 생각했다.
주말에는 남편의 친척분들과 영흥도에 놀러 가서 고기를 구워먹기로 했다. 결혼 이후에 처음 뵙는 자리라 굉장히 긴장이 된다. 나와 다르게 남편은 그냥 편하게 가라고 하지만 무척 어렵다.
고민하는 중에 상자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택배가 문 앞에 도착했나보다.
친척 분들께 드릴 도라지정과와 호두정과가 도착한 것 같은데......... 옆집 택배라면 좀 민망할 것 같다.
일단 택배는 굉장히 설렘이 가득한 소리지 않은가. 빠르게 문을 열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