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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Aug 27. 2023

아빠, 전데요. 낚시가세요?

진정한 '효도'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하루.


오늘 아침은 아니고 어제 아침에 있던 일인데

너무 또렷해서 꼭 적어보고 싶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김밥을 말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재료를 차곡차곡 준비해놨었다.




김, 계란, 햄, 맛살, 유부, 어묵, 당근, 시금치, 단무지, 우엉.

여러 색이 흰 밥에 어우러지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여러 음식 중에서도 만들어 놓고 나면 알록달록하니 귀여운 게

김밥인 것 같다.


김밥을 여러 줄 말려고 재료와 참기름, 깨를 식탁에 놓을 쯤

토요일마다 낚시를 가시는 아빠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통화중이었다.




시장 일을 하시는 아빠는 새벽에 출근해서 오전에 퇴근을 하시기 때문에

일반적인 출퇴근 시간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 분은 아니다.


혹시 내가 늦을까봐 7시가 좀 안 된 6시 대에 전화를 드렸는데

두 세번 통화 모두 다 통화중이었다.


김밥을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놓은 다음에 돌돌 말기 전에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건너편 너머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네 아빠. 김밥 만드려고 하는데 아빠 낚시가시면 몇 줄 챙겨드릴까해서요~'


'곧 가게 마무리하고 이따 출발해야지. 몇 줄 줘봐 그러면~'


'아빠 가게에서 저희 집 쪽 오실때 전화하세요 내려갈게요'


'어 그래~~'




심심하고 투박하지만 일주일동안 잘 있었냐는 말이

대화의 향과 흐름에 묻어난 것 같았다. 마음이 편했었다.


지난 주 우리 가족과 남편이 강원도 여행을 갔다 왔어서 그 이후로는

처음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평소 질문이 많고 잔소리가 다소 범벅인 나만 보면 노심초사인 엄마와 다르게

심플하고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아빠가 지금도 훨씬 편하다. 

이것은 엄마가 서운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며..




8시가 좀 넘었으려나 김밥을 다 말아서 포장까지 하니

아빠가 전화를 하셨다. 니네 집 지하 주차장 말고 1층에

차 댈테니까 내려오라고 하신 아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리나케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아빠는 운전석에서 내리시며 김밥을 가져가시려는데

내가 말을 건넸다.


"아빠 다시 타세요~ 저 가다가 언니네 집 쪽에서 좀 내려주세요~"




머쓱해하시며 가족여행을 다녀와서부터 조카가 열이 있다고

요새 애들 사이에서 유행인 것 같다 라는 대화를 나누며


아빠 차에서 내려서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3분 남짓의 대화였지만 즐거웠다.




언니네 집 문 앞에 비대면 배달을

완료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겨놓고 집으로 걸어왔다.



평소 요리를 안 좋아하는 언니인데다가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자고,

조카도 아파서 아침을 하기 귀찮을 것 같아서 겸사겸사 홈베이킹 하면서 

만들어놓은 스콘, 쿠키, 블루베리 티라미수는 디저트로 챙겨먹으라고 했다.



어떻게 하다 신혼집을 얻다보니 타이밍과 운이 들어 맞아서

부모님과 언니형부네와 같은 구에 살고 있는데,

사거리나 구역 몇개만 넘으면 다들 가까운데 살아서

오랜만에 김밥을 10줄 가까이 말아본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이 회식의 여파로 깊은 잠이 들어있다가 

막 깬 것 같았다.


"김밥 다 말아놓고 배달도 갔다와서 이제 우리만 먹으면돼.

먹고 싶을 때 말하면 아침 준비할게~" 

라고 했더니 언제 조용조용 만들고 나갔다왔냐고 신기해했다. 




늘 음식은 나눠먹을 것과 같이 조금 넉넉하게 하면 

이상하게 어깨가 뻐근하다 못해 묵직해지지만,

다들 맛있게 먹었다고 이야기해주면 그게 참 뿌듯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마트에서 세일해서 사다놓은 삼겹살, 목살, 항정살을 

조금조금씩 양파, 감자, 마늘과 구워봐야겠다.

상추, 깻잎도 싸먹고, 얼마전에 무쳐놓은 낙지젓도 챙겨먹어야겠다.




오래 이어진 다이어트 정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주말만큼은 잘 챙겨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끼라도 잘 챙겨드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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