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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Sep 08. 2023

생각을 나중에

때로는 그게 필요한 순간들도 있었다.


시간은 지나갈 것 같지 않았지만 속전속결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독립한지 반 년이 지났으며, 결혼한지는 어느덧 석달이 지났다.




결혼해서는 쳐다만 봐도 웃긴 날도 있었지만, 슬프고 속이 답답한 날도 있었다.

열흘 전 쯤인가 근처에 사는 사촌오빠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도쿄에 가려는데 혹시 돼지코가 있냐고 물어서, 사진을 찍어 보내줬더니

혹시 그거말고 다른 게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다고 해서 멋쩍게 웃었다.


이내 신혼 생활은 재미있냐고 물었고, 나는 뭐 반반 이라고 했더니

그때는 그냥 재밌어야지 라고 답이 와서 영문을 모른채 웃기만 했었다.

사촌오빠는 결혼한지 8년 정도 지나서 그런가 뭔가 훨씬 여유롭다고 생각했다.




문득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뭐였는지를 떠올려봤다.


"이 사람의 가족이 돼서 내가 지켜주고 싶다"

"이 사람과 함께 했을 때 나는 가장 나 다워 지는 것 같다"

"이 사람이랑 있으면 행복함을 느끼는 동시에 

행복은 남의 일이라 생각했지만 내 일이 될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든다"


크게 이렇게 세 가지였다.




지난 달 남편은 22일에 쉬게 될 것 같은데 제주도나 갈까라고 말했다.

나는 비행기표도 가격이 만만찮을 것 같으니 그냥 서울에 있지뭐 라고 했는데

"우리에게 아이가 빨리 찾아온다면 언제 제주도를 갈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냥 가자"


그래서 속전속결로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해놨고,

나머지 어디에 가고, 무얼 먹을지,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니

간김에 양가에는 뭘 사다드릴지를 고민하는 것은 차차 하기로 했다.



평소 계획적인 편이고, 자료 조사와 정리를 담당하는 나는

신혼집 마련, 여러 서류 준비, 결혼 준비에 반 년 이상을 머리를 쓰고

체력을 써버린 탓에 지금은 일주일 전 쯤 정리해볼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력이 나쁜 편인 남편은 안경이 세 개 정도 있는데,

그 중 잘쓰다 안쓰던 안경을 나에게 넘겼다. 물론 나도 마음에 들어서

흔쾌히 안경점에 가서 시력검사만 다시하고 알만 바꿔서 잘 쓰고 있는 중이다.


현재 같은 브랜드의 안경을 나는 카키색, 남편은 은색테를 착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안경을 같이 쓰고 장을 보거나 외출을 하게 될 경우에는

현관 거울을 보게 될 떄 쯤 얼굴이 많이 닮아있다고 느낀다.



지난 달부터 줄곧 흥미있던 취미인 베이킹을 다시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코코넛쿠키와 코코넛마쉬멜로에 밤을 얹은 쿠키, 오레오머핀을 만들었으며

오늘은 코코넛그래놀라와 무화과쨈을 만들었다.


평소 잘 만나지는 않지만 남편의 동료들 술자리와 사석 송년회에서 만났던

동료의 와이프 한 분께 드릴 쿠키박스와 쨈을 주섬주섬 챙겨서 편지도 한 장 넣어서 

전해줄겸 다녀왔다. 동료부부는 와이프 분이 열 살이 어리고, 우리부부는 남편이

네 살 어렸는데 알고보니 각 집의 어린 배우자가 동갑이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공교롭게 남편이 둘 다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크게 잔소리는 안하고 술을 먹게 내버려둔다는 더 강력한 공통점도 있었다.



아까 남편에게는 항상 그렇듯 미리 메세지를 남기고, 도착 전에 전화 통화도 한 후 다녀왔다.

꽤 많이 얼굴을 익힌 사이라 동료분들과는 어색함이 거의 없는 반가운 사이이지만,

술자리가 있을 때면 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잠깐의 근황을 서로 물은 후 집에 먼저 온다.


잠시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이고 계시던 동료분들께도 인사를 하고, 

남편과도 맛있게 먹고 오라고 호탕하게 악수를 건네고 나왔다.


곧 집에 오면 반가운 악수를 건네고, 날씨가 여름 같아서 더 고생 많았다고

등을 두들겨줘야겠다. 늘 아침에 출근 할 때 고맙다는 말을 건네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 들어올 때 바로 고맙다는 말을 건네봐야겠다.




왜냐, 정말 고마우니까 그렇다.

내일은 집에서 같이 삼겹살과 항정살을 구워먹으면서 한 잔 하자고 해야겠다.


다이어트 중이라 평일에는 관리를 계속 하고, 금요일부터 주말이 끝날 때까지는

먹고 싶은 것을 어느 정도는 먹어주는 편이라, 늘 목요일에서 금요일이 넘어가는

자정 어수룩한 시간은 내게 환희가 가득차는 시간들이다.


나는 평소에 술을 잘 안마시긴 하지만 내일은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여보, 집에 조심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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